[이제 가서 알리자]
왕하 7:3~11
올해 표어는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입니다. 교회와 가정이 세워지고, 육신의 장막도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야합니다. 우리가 구속사의 복음을 알려야 할 선교영역이 많습니다. 말씀 들고 나누어줄 것만 있는 인생이 되어 의료 선교, 건축 선교, 교육 선교, 미용 선교 등 이제 가서 이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오늘은 이제 가서 알리자에 대해 THINK 해보겠습니다.
첫째,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람 군대의 침공으로 먹을 것이 동이나 성벽 안팎이 다 죽음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극한 굶주림 속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공동체의 보살핌도 전혀 받지 못하는 오늘 주인공 나병환자 네 사람 있습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육적 나병환자를 통해 영적인 나병환자 같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열왕기하에 나병환자들이 등장합니다.유대인의 탈무드는 여러 곳에서 이 나병환자 네 명을 게하시와 그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게하시는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은혜도 주셨지만, 그 은혜를 소화하지 못하고 금세 악하고 음란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 버리는 자신을 보며 절망했을 겁니다. 나병이라는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 그대로 죽고 싶었겠지만, 다른 세 명의 나병환자 친구들이 '어찌 여기서 죽기만 기다리랴, 같이 살아보자' 외쳐주니 같이 끌려가서 결국 엄청난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이와 달리 여호람왕은 아람이 쳐들어와서 피투성이가 된 재앙에서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반문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조차 끊었습니다. 능력 있는 장관도 물가가 떨어진다는 엘리사의 예언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옆에 누가 있고 어떤 공동체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것을 깨는 이혼도,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끝내는 자살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한 죄입니다. 그 결론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여기서도 죽을 것 같고 저기서도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이런 고난은 죽을 이유가 아니라 거듭나고 복음을 경험할 기회입니다. 그래서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어야 하고 깨어진 결혼도 지켜야 합니다.하나님이 화살을 쏘셨으면 책임지십니다. 훈련입니다. 길이 참기 바랍니다.주님이 온전히 회복시키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둘째, 값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죽을 것 같은 고난에서 죽기만 기다리기를 거부한 이 네 명의 나병환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아람 진영으로 갔더니 식량, 무기, 은과 금, 의복뿐 아니라 말과 나귀도 그대로 있고 텅텅 비었습니다.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6절) 아람 군대는 자기들이 감히 맞서 싸울 수 없는 엄청난 이스라엘의 지원군이 온다고 착각하여 몸만 겨우 도망간 것입니다.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사마리아를 에워싼 군대를 한순간에 몰아내십니다. 이렇게 값없이 받은 구원이 우리가 알릴 소식입니다. 합격, 취업, 승진, 성공 등 내 힘과 수고로 이룬 성취의 소식은 결국 내 강함을 자랑하는 겁니다. 이런 자랑은 풍선을 부는 것 같아서 과장하고 없는 것도 지어내 보태다 결국 뻥! 하고 터져 한방에 추락해 버립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사도바울은 부득불 자랑하게 되더라도 오직 약한 것만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내 약함을 자랑할 때 그 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강한 능력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려야 할 아름다운 소식은 주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은혜로 베푸신 구원뿐입니다. 구원은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더욱 커져서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고 약함을 자랑하는 모임이 바로 목장이며, 목장 참석이 선교의 첫 교두보입니다.
셋째,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나병 환자 네 사람이 함께 먹고 마시고 물건을 숨기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겠도다' 합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동료 시민이 생각났고, 이 아름다운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알리지 않고 있는 게 잘못임을 알았습니다. 은과 금과 의복 너머에 있는 구원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들을 버린 사람들이 있는 사마리아 성으로 돌아가 문지기를 부릅니다. 문지기는 나병 걸린 자기들을 향한 사회 전체의 배척과 조롱을 상징하는 존재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나타냅니다. 게하시는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수록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결국 내 구원 때문에 가장 수고한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왕이나 장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도 알리지 않으시고 성 밖에 격리된 나병환자를 통해 알리십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오히려 다 무너진 인생, 소망 없는 인생, 자랑할 게 악함뿐인 인생을 통해 알리셔서 그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십니다. 거주할 처소를 세우는 사명은 교회 확장이 아닙니다.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 운동을 일으켜 가정 중수와 인구절벽 문제까지 해결하자는 겁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0.72이고 서울은 0.59로 심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는 목장마다 가임 19세-49세 중 자녀가 몇이 있는가를 부부로 나누어 계산해보니,출산율이 1-2%가 나왔습니다.인권이 왕 노릇 해서 낙태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마음대로 결혼도 안 하고 이혼하니 말씀 묵상해서 나라를 살리는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아들 부부의 이혼을 말리기 위해 아버지 집사님께서 아들 내외, 사돈댁 다 불러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혼해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내 죄 때문이라며 도리어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네가 이혼을 취하할 때까지 내가 무릎을 펴지 않겠다'고 하니 드디어 아들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교회 저력, 진정한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목장에 가는 게 선교의 첫걸음입니다.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루니 힘든 가운데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나병 공동체가 가장 큰 구원을 가지고 왔듯 새해에는 우리 모두 이런 뜨거운 공동체가 되어, 이제 가서 알리는 선교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