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여시매]
왕하 6:17~23
우리는 지난 주 본문을 통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멈추면, 결국 원하는 것만 믿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다가 또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한 자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눈을 여셨다.고 합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눈을 여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통회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사환을 위한 기도)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군대가 한밤중에 도단을 포위한 것을 보고 두려워 떠니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더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환은 어느 방향에서도 원군이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안심은커녕 더 어리둥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다는 히브리 단어 팔라레로 통회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엘리사는 이 구제 불능의 사환을 보며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통회 자복하여 그가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엘리사는 아무 자격 없는 자신을 사명자로 세워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제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 양육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자랑할 수 없는 뿌듯함 등을 통회 자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즉시 응답하십니다. 그러자 사환의 눈이 열려 엘리사를 보호하고 아람 군대를 압도하고도 남을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영의 눈은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누구도 뚫을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을 믿으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보호해 주는 것은 치열한 삶을 둘러 보호하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아람을 위한 기도)
아람 군대가 엘리사 가까이 몰려왔을 때 엘리사는 사환을 위한 기도와는 정반대로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들의 눈을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움으로 치시니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공격 목표였던 엘리사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기는 보지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엘리사가 그들을 이스라엘 군대 본진인 사마리아 한가운데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눈을 여시니 앞에 있는 엘리사와 이스라엘 정예부대에 의해 이미 포위된 자신들의 처지가 보입니다. 엘리사의 기도는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봐야 할 것을 보고 따라오게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인간은 100% 악하고 음란하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따라간다면 결말은 멸망과 죽음입니다. 고난이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이 막히고 꺾이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는 한계를 알게 됩니다. 그 환경에 매여봐야 주님의 십자가를 보게 되고, 다 알지 못해도 여러 사람과 사건에 매여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매인 환경이 축복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고난이 선물입니다.
셋째,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환을 위한 이타적인 기도를 하고, 원수인 아람을 위해 기도하면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아람 군대가 포위당하니 여호람 왕에게는 원수 갚을 절호의 기회였을텐데, 바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아람 군대를 진멸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은인인 엘리사 선지자 때문에 기회를 얻었기에 '내 아버지여!' 라고 부르며 '내가 치리이까?' 두 번이나 반복하며 물어봅니다. 엘리사는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죽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전쟁 없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잡힌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식을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여호람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니 그 이후에 아람 군대가 돌아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 곁에 있는가는 너무 중요합니다.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는 아람 군대 같은 사람을 향해 내가 치리이까 할 것이 아니라 그도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죄인임을 알고, 보고 싶은 것 쫓다가 망하지 않고 봐야 할 것을 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모두 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세상 모임이 많아서 남편과 함께 자주 참석하는데, 목장에서 가지 말라고 하니 반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세상 모임에 가서 전도도 할 수 있는데 왜 못 가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 년 동안 목장에 참석하고 양육 받다 보니 세상 친구들과 벽이 생기는 느낌이 들어 목자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반석 위에 올라가면 전도가 되지만 세상 모임을 좋아 하다보면 흘러 떠내려 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 옆에 말 안 듣는 사환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 죄를 보며 이타적으로 그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떠져서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되면 나의 불간증이 다른 사람을 보호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아람 같은 원수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닌 봐야 할 것을 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바라보는 영적 시력을 회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