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왕하 6:8~16
성경에는 믿음, 소망, 사랑, 순종 등 많은 명령이 있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영적 육적 정신적으로 두려울 일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전한 방식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내 예상과 기대를 믿으면 안 됩니다.
다윗 왕 시대에는 아람이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벤하닷 1세와 길르앗라못 전투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친 아람은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그 백성을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아람왕은 나아만이 이스라엘 선지자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내가 잘해줬다고 상대가 고마워 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아람의 공격 목표를 여호람 왕에게 미리 알려줬습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아람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만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진을 치고 방어 태세를 갖고 있으니 아람 왕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예상과 기대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심복 중에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안 되니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분노는 두려움을 극복해 보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자기 예상과 기대를 믿는 사람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람 왕은 남들은 다 아는 것을 혼자만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예상과 기대를 너무 믿지 말고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상하시고 가장 선한 기대를 해야 할 분이 하나님밖에 없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람 왕은 자신이 아끼는 장군이 치료되었다는 이 결과에만 관심이 있고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하 중 한 명이 엘리사 선지자를 기억하고 말해줍니다. 아람 왕은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지만 오히려 신하에게 배워야 했습니다. 만약 신하에게 선지자에 대한 설명을 들고 '와! 그런 대단한 선지자는 내가 어찌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는 마음이 완악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가 지시한 것은 엘리사 선지자가 도단에 있는 것을 파악해서 사단급 병력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본 사환이 놀라 선생님께 '아아,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외칩니다. 우리가 두려워서 어찌하니이까!를 외치지만, 이렇게 외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고민하다 결국 방법을 찾지만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샛길입니다. 손에 완전히 힘을 풀고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고 빼앗길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걱정하고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큰 사건이 생겨 두려움 가운데 있다면 내가 아직도 뭔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인데 참 쉽지 않습니다. 나의 무능을 인정하면 주님이 일하시기에 고난이 축복인 것입니다. 두려운 사건 앞에서 절망하지 말고, 나의 무능을 인정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할 것을 믿으며 주님이 사건을 통해 나를 챙겨 주시는구나! 반드시 구원하겠구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우리와 함께한 자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8-23절까지 이름이 소개된 사람은 오직 엘리사뿐입니다. 이 사건은 정치사도 아니고 전쟁사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되는 엘리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나병에 걸려도 치리를 받아도 또 어리둥절 하며 동공에 지진이 난 채로 그냥 '오오, 내 주여 어찌하리이까!' 합니다. 이렇게 두려움에 소리치는 게하시에게 엘리사는 지금 도단에 군대도 없고 우리 둘 밖에 없지만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게하시는 우리가 없어서 두려워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중요한 것은 이 공동체를 통해서 한 영혼을 살리고 돌보니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한 자와 더불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그날 주신 말씀만큼만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내밀어 십자가를 집으시길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9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 집사님이 마을버스에서 내리려고 서 있다가 넘어지셨습니다. 어깨뼈가 골절되어 오랫동안 입원을 하셨는데 그 집사님은 보훈 가족이라 병원비가 무료라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기사의 앞일을 보장해 주고자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적용하시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이 걱정되셨던 기사님은 식대와 병원비와 위로금을 드렸는데, 그걸 보고 교회 안 나가는 딸이 500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기사에게 연락했다고 합니다. 예수 믿으라고,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해놓고 돈을 보니까 게하시처럼 탐심이 발동해서 예수께 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믿는 작은 딸이 다시 전화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너무 미안하다. 식대와 병원비 100만원은 안 받겠다. 우리 언니가 큰 실수를 했다고 죄송하다.'했다고 합니다. 기사님은 이런 천사는 처음 봤다고 하며 너무 감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통장 확인을 하러 은행에 갔는데, 자신도 모르는 통장에 나라에서 15년 동안 10만 원씩 보내준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00만 원 포기했더니 거기 이천만 원이 있더라는 겁니다. 이런 분이 예배 돕는 수종자이고 봉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내 예상과 기대를 믿으면 안 되고,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있어야 됩니다. 공동체에서 말씀 묵상하고 나누며 가다보면 하나님이 알려주시는데 세상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여러분, 목장에 꼭 나가셔서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는 고백을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