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9~15
지난주 고쳐주소서!를 외치며 저희의 아픔을 올려드렸습니다. 많은 치유가 일어났지요? 지금 세계 도처에서는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끔찍한 전쟁 범죄가 일어나고 사람을 무차별하게 죽이는데,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간절한 기도를 담아 오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우리 모두 깨끗하게 되었더라의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아만을 고치기 위해 어린 소녀에서 안주인,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 그리고 엘리사로 우연 같은 만남이 이어집니다. 내 인생은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 있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여기에 내 생각이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무엇인가 이룬 사람들은 악한 내 생각이 하나님 자리에 있어 하나님 믿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아만을 양육하시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나아만은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점령군 사령관의 모습으로 선지자의 집 문 앞에 섰는데, 엘리사가 직접 자기 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종을 통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고 하니 분노합니다.그는 신비한 술법도 쓰지 않고 성의 없는 처방과 흙이 많아 더러워 보이는 요단강물에 몸을 씻으라고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처방이 지질하게 느껴져 분노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으로 분노하며 돌이켜 떠납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 병이나 고쳐주는 분으로 오해하는 내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으로 꽉 차 있어 거만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거만하면 들어야 할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든 본성적으로 내가 남보다 낫다고 하는 거만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만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도 자신을 남보다 높여 존재를 증명하려는 고등교만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남을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찾으며 질문하는 것이 내 생각을 버리는 비결입니다. 문제가 안 풀릴 때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지 큐티하며 질문해야 합니다.
둘째, 벌 떼처럼 나아와 해석해 주는 지체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나아만은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힘과 시간을 들여서 왔는데, 문전박대를 받았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돌아갑니다. 이에 눈치만 보고 있던 종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 용기를 냅니다. 혼자서는 감당 못 할 상황이기에 여럿이 함께 벌 떼처럼 장군에게 나아와 납작 엎드려 말합니다. '선지자가 어려운 일을 하라고 했다면 그대로 하셨을 것 같아요. 그 방법이 너무 쉽고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하며 공손한 태도로 장군의 기분을 살피며 설득합니다. 구원을 위한 이런 태도가 너무 중요합니다. 나아만은 마음이 높아져 있고 내 생각으로 꽉 차 있어 엘리사의 처방을 듣지 못하는데, 그의 종들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벌 떼처럼 나아와 해석해 주는 지체가 있을 때, 말씀대로 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해지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지만,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불러주신 하나님이 전능하시므로, 우리가 강한 공동체가 됩니다.
공동체의 벌 떼 처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목장에 잘 참석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처방에도 순종하지 않는 집사님 부부가 와인을 상으로 받았는데, 무슨 일인지 와인병을 깨며 화풀이하는 아내를 남편이 말리다 아내가 머리를 다쳤습니다. 벌 떼 목장 집사님들은 '대체 왜 처방을 했는데 속이고 세상적 모임에 나가십니까? 죽는 걸 알면서 나가는 집사님은 공동체의 권면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우리들교회에서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건이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말씀 듣고 변해야 합니다. 모두 말씀 안에서 변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 갑시다.' 이런 목장 식구들만 있으면 소도 잡고 말도 잡을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종들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물로 들어갑니다. 공동체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엘리사가 말한 것보다 훨씬 철저하고 진실하게 요단강 물속에 몸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내려갈 뿐만 아니라, 일곱 번 모두 반복했습니다. 성경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주로 죽음을 상징하는데, 죽어지는 순종은 겸손을 의미하고, 그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놀라운 것은 나병에 걸린 나아만의 흉측한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일곱 번 몸을 담근 직후에 바로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깨끗해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회복을 체험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되돌아오는데, 이는 영적 회심을 하여 영육 간에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을 육적으로 치료하는 데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여 차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국, 깨끗한 자는 살아난 자이고, 살아난 자는 겸손한 자이며, 겸손한 자는 남을 낫게 여기는 자입니다. 우리는 병 고침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고, 고침 받아 남을 낫게 여기며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되셔야 합니다.
조선의 제16대 국왕인조는 나라에 내우외환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먹을 것 입을 것도 없는 처참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의 죄를 운운하면서 백성에게 머리를 숙였다고 합니다. 당시 왕으로서 사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보냈던 소현세자가 돌아와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하려고 하니 이를 견제하여 독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는 누구도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속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분별하는 것이 깨끗해지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거만한 내 생각을 버리고, 벌 떼 공동체의 처방을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끗해지는 비결입니다. 이를 위해 죽어지는 겸손을 구하는 여러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