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물어야 합니다]
왕하1:1~6
새로운 인공지능 ChatGPT는 생성형 대화로 인간과 대화하는 것처럼 즉석에서 답변을 제공해 줍니다. 그런데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큐티하는 우리들은 질문의 대가들이니 ChatGPT 시대에도 잘 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혼잡한 시대에 잘 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잘못 물으면 배반은 따라옵니다.
열왕기서는 왕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바벨론 포로로 간 후에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쓴 역사서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가장 혼잡한 시대로 망하기 전에 풍요를 잠깐 허락하셨는데, 풍요하니 오히려 말씀을 듣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우상숭배의 죄로 하나님의 징계가 그의 아들 아하시아에게 임했습니다. 아합의 죽음은 악행의 끝이 아니라 악행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지는 재앙의 시작이었습니다. 모압은 아버지 롯과 큰딸이 동침해서 낳은 후손으로 오랜 세월 속국으로 멍에를 벗기 위해 호시탐탐 틈을 보다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에 대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의지했던 아합은 죽고 무시했던 모압에게 배반당했습니다. 내가 권력과 재물을 남기고 죽으면 그것 때문에 나를 배반하고 자녀를 배반하고 집안을 배반할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배반당하지 않는 삶의 비결입니다.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시키는 것은 금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내공이 튼튼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가 솔직하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결과보다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배신의 사건이 있자마자 아하시야가 다락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열왕기서에 다락이 여러 번 나오는데, 엘리야는 다락에서 사르밧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고, 엘리사도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습니다. 같은 장소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살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는 죽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유일한 관심은 이 병이 낫겠나?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에 고난을 주실 때는 잠시 멈추고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건이라는 문제도 그걸 허락하신 주님의 의도와 뜻을 알아야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왜?'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날마다 사건이 왔을 때 이 사건 언제 끝나? 그러지 말고 왜 왔을까? 내가 생각해야 할 일은 뭐지? 내가 봐야 할 죄악은 뭐지? 이런 구속사적인 질문을 하고 응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모든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도 분명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인데, 블레셋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 안 묻는 걸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가 싫어서입니다. 아합왕은 바알을 섬기던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불신 결혼하여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고 바알 숭배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우상 숭배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절대로 묻지 않습니다. 둘째로, 아하시야는 욕심을 채우려고 기복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바알세붑에게 묻고자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모태 바알 교인으로 바알을 섬기던 부모가 하루 사이에 비참하게 다 죽으니까 사마리아 신전에 있는 바알이 아닌 에그론에 있는 원조 바알세붑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물으십니다. 에그론은 불모의 땅이라는 뜻이고 바알세붑은 파리의 왕이란 뜻으로 파리가 모든 질병에서 보호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가장 큰 벌을 여왕벌이라고 하는데 가장 큰 파리를 여왕파리라고 하지 않고 똥파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파리의 왕 똥파리에게 물으러 가냐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물으러 가는 대상은 고작 똥파리신 같은 바알세붑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불신과 욕심으로 우상에게 물은 결과는 '죽는다' 입니다. 우리가 자꾸 이상한 곳을 찾아다니며 묻는 이유는 십자가 지는 삶이 너무 싫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에 십자가를 길로 놓고 내 문제를 누구한테 묻는가는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공동체 나눔입니다.
남편이 한 달 이상 집에 안 들어오니 어떻게든 돌아오게 하려고 목사님, 초원님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녹취하고 맨날 성경 말씀 듣는 아내 집사님만 혼 내시고, 남편 이야기는 다 맞다고 하시며 본인 이야기는 아예 듣지 않아 그 자리에서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연약하고 집사님을 너무 믿으니까 모두 남편 편을 들어준 것이라고 답장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계속 띄워주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눌러줘야 중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잘 못 물으면 배반은 따라옵니다. 결과보다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인데, 우리 부모님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길 바랍니다. 부모님들이 비록 자녀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했어도 우리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구원을 위해서 잘 물으며 구원의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고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고 허락하신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바알세붑이 아닌 하나님께 묻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