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산의 상속자]
마 5:9
우리는 계속해서 마태복음 5장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팔복산에서 가난한 자가 누릴 애통, 온유, 의의 주림으로 배부르게 되고, 팔복산의 통로인 긍휼로 팔복산의 시력인 청결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청결함으로 화평을 이루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상속자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은 팔복산의 상속자가 되는 일곱째 복, 화평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상대와 함께 화평을 누립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의 헬라어 에이레노포이오이는 성경에서 오늘 본문에 단 한 번 쓰인 단어인데,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이 세상의 깨어진 평화가 복원되어야 함을 전제하고 궁극적으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힘 있는 사람이 정한 질서에 따라 한쪽이 양보하면 겉으로는 화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참던 쪽의 인내심이 폭발하면 다시 싸우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반복을 화평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화평은 다투고 대립하던 양쪽이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의 질서가 아닌 온 우주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질서가 기준이 되어야 화평, 바로 샬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의 화목을 위해 싸움만 그치는 위장된 감정, 거짓된 연민,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핏줄 타령은 깨어져야 할 일시적 화평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가족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권세와 재물을 포기해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화평을 위해 일시적 화평을 깰 수도 있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룹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의 동사형이 골로새서 1장 20절에 나옵니다. 화목하게 되는 길은 십자가밖에 없고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한 사람이 죽어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을 때, 하나님과 모든 사람이 화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똑같이 상속자 신분의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족과 이웃을 화목하게 해야 할 사명과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셨다는 것을 들을지어다 (약2:5) 말씀을 명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좋은 환경과 외모 스펙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가난해지기는 불가능합니다. 배우자가 원수 같을수록 신랑되신 주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배우자를 바꾸려 하지 말고 주님 신랑 만나는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주제가 상속자이다 보니, 자녀가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나의 분신 같은 자녀를 주님보다 사랑하지 않으려면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자녀의 품질이 좋으면 교만해지고 품질이 나쁘면 열등감으로 닦달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썩어질 것을 버림으로 얻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의 처형장을 바라보면서 '나를 따르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환경을 피하거나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본질적인 화평을 막습니다.
나치 정권의 학살에 600만 명의 유대인들은 항거하지 않고 순종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영육 간에 금수저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믿지만, 목수의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님, 십자가의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셋째,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교회는 구원 때문에 각자의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눈높이에서 설득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유다가 이 설득을 가장 잘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아먹고, 이방 여인과 불신 결혼하고, 첫째와 둘째 아들이 죽는 사건에도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신전 창기와 놀아났는데 그 창기가 며느리 다말이었습니다. 유다는 도장과 끈 지팡이를 가지고 영적 기업인 자손을 잇기 위해 수치를 감당한 다말에게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심하고 깨지고 나니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을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득했는데, 22년 동안 요셉으로 인해 한결같이 슬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너무 중요한 것을 알게 되니 연약해도 영적 아비인 아버지 야곱을 무조건 사랑하게 됐습니다. 유다는 아버지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고 자기를 버리는 사랑으로 아버지와 요셉을 설득하고 형제들의 대화합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화평의 메신저가 되었다고 해도 사는 날까지 칭송을 받은 사람은 요셉입니다. 유다가 회심 이후 그림자같이 있다가 22년 만에 화평의 중재자가 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만고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등에 짊어지고 살기 때문에, 요셉을 시기하지도 않고 야곱을 정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직계 조상 유다와 예수의 표상인 요셉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땅에서 살아도 하나님 나라의 창대함을 이 세상에서 보일 수 있는 길이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말할 때는 화평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나고 보니 유다를 소개하는 자체가 좁은 길 같습니다.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짧은 인생에서 유다의 구속사에 대해 거부감이 큰 분들이 언제나 계셨고, 그래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날마다 겪으니, 이번 주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를 읊조리며 지냈습니다. 그래도 꼭 살아나는 그 한 분이 계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카멜레온처럼 자꾸 세상으로 한쪽 눈이 돌아가고, 힘들고 지치고 낙망할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말씀으로 돌이키며 큐티하고 목장 가고 예배드리는 것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팔복산행 기차에서 하차하지 마시고, 화평의 비결인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로 팔복산의 상속자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