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우리들행전]
행28:28-31
여러분,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자신 있으십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성령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사명으로 시작된 사도행전이 성령 행전으로 이어져서 바울처럼 거침없이 나가는 우리들 행전을 쓰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우리들 행전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런즉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까지 와서 자신의 죽을 뻔한 경험과 276명이 모두 구원받은 이야기를 했지만, 유대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이 안 들리는 맨 끝에는 항상 돈과 음란이 있습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의 특징이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전쟁도 하고 혁명도 하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끝에는 늘 이권과 이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차별 받는 민족 아니겠습니까? 시집살이했던 사람이 더 시집살이시킨다고 그들이 얼마나 이방인을 지독하게 차별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미워합니까?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차별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보낸 게 아닙니다. 너희들도 제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저는 우리나라 교계에서는 이방인과 같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연약하고 고난받은 죄인에게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임하여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교회를 통해 이 땅에 무엇인가 하실 말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여자로서 무시당했지만 제가 '여자들이여! 다 나와라! 목에 힘주라!'는 게 아니라 바울이 유대인을 사랑하듯 저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남편 세우고 교계에서는 남자 목사님을 세우는 것이 핵심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머리가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남녀는 동등하지만,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여자를 차별하면 안 됩니다. 지나고 보면 성경대로 원칙대로가 가장 부흥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목장도 이렇게 성경대로 원칙대로 인도해야 합니다. 올해가 우리들교회 20주년이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사명으로 써 내려가야 할 우리들 행전입니다.
둘째, 여전한 방식으로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해야 합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던 것처럼 로마의 셋집에서도 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실패한 것 같지만 끝나도 실패한 게 아닙니다. 오늘 하루 감사하는 게 최고의 성령행전을 쓰는 비결입니다. 여기서 영접하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바울의 집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안 듣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영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 예배를 드리며, 목장에 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행전을 쓰기 위해서 목장에 모이라고 하니까 세상 모임처럼 친목을 도모하고 '친구 아이가' 하면서, '술 한 잔쯤 어때?'하면서 먹고 놀아서는 안 됩니다. 목장이나 회사에서나 술 절제를 보여주는 게 믿음입니다.
삼백 년 후에 제국을 복음으로 삼키고 유럽의 문명을 바꾸게 될 하나님 나라 운동은 참으로 소박하게 바울의 셋집 성경 공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렇게 쓰임 받는 것도 우리 집이 날마다 목장 예배 처소로 쓰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장이 바뀔 때마다 두렵지만 싫은 사람을 만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면접도 잘 보고 회사생활도 잘하는 것을 보면, 목장은 정말 말할 수 없는 최고의 시스템이 맞습니다. 목장 바뀌는 것에는 이렇게 분명한 유익이 있습니다.
셋째, '거침없이' 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입니다. 한글 성경으로는 평범한 문장으로 보이지만 원문을 보면 거침없이란 부사로 끝납니다. 부사란 동사, 형용사,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글도 그렇고 헬라어도 그렇고 마지막에 부사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사도행전은 아직 안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알지 못하면 이런 담대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재판과 구금이라는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굴복하지 않고 성령 충만함으로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으로 우뚝 섭니다. 그는 과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였음을 늘 기억하고 자기 죄를 보니 항상 담대합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매인 환경에 있을지라도 복음은 절대 매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2년 동안 로마에 있으면서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의 옥중서신을 남겼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참 불행한 일 같았지만, 옥중서신을 남기는 위대한 일을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우리들행전을 거침없이 쓰려면 바로 이 우리가 너무 중요합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사도행전을 쓴 누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여정을 기록해준 사람이 누가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그 양만 놓고 보면 바울서신보다 더 길고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에는 누가의 이름이 일절 안 나옵니다. 예수님과 바울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기 이름 하나도 안 내고 썼는데 하나님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목장에서도 정말 우리가 되는 한두 사람이 목장에 있으면 우리들행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의 깃발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잘 분별하여서 우리를 잘 만들어가는 올 2023년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