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의 원함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소원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의 소원을 성령으로 품어야 최고의 소원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원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이같이는 바울이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하는 하늘의 소리를 거스르지 아니하고 인정하여 맞습니다하고 순종하여 피바람이 불 다메섹으로 가서 변화시킨 간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은혜받는 게 아니고 바울을 죽이고자 합니다. 베스도가 큰 소리를 질러서'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도저히 더 들어줄 수가 없다.'라고 바울을 정신이상 상태로 평가합니다. 그는 죽은 사람의 부활과 부활하신 예수가 '사울아 사울아' 하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완전히 정신 나간 것으로 여긴 겁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괜히 유대인의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얘기를 듣고자 청문회를 열었는데 자기 상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자체가 미련한 것으로 생각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미쳤다고 하는 말에 참되고 온전한 말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이렇게 구원 때문에 항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의 경험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해받고 갇혀 있는 시간에 바울은 한 사람에게, 공회에, 왕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끝없는 반대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점점 더 직면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간증은 범죄와 관계있는 증언을 하는 것으로 자신이 높아진 것을 내놓으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약함과 죄됨과 추함을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는 죄의 고백을 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열매가 많은데 남을 주께로 인도한 후에 버림받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저도 자유함은 있지만 자신이 없는데 목회를 하게 하시니까 바울처럼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본문이 너무 이해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여행을 가고 안식년을 갖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갇혀 있었기 때문에 40권이 넘는 책이 쉬지 않고 나왔습니다.
둘째,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방인인 베스도가 바울의 말을 전혀 이해 못하니까,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의 전문가인 유대인의 왕 아그립바 왕에게 담대히 말합니다. 바울은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담대히 말합니다. 그런데 아그립바왕, 베스도, 엘릭스 총독들, 유대인들까지 대단한 분들이 전부 부활을 안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씀을 잘 전해서 믿는 게 아니라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아그립바는 인생이 고난이라 바울의 참되고 온전한 말과 간증을 듣고 당황했지만, 바울이 아무리 설득하고 권해도 나는 너처럼 예수쟁이가 될 마음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으면 왕의 자리도 내려놓아야 되고, 유대인들이 가만 안 두니까, 재산 권세 다 뺏기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면서 유대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 지도자들의 고소를 반박하고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계속 자기 간증을 했습니다. 그 정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입니다. 바울은 걸림돌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셋째, 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원함은 다 말짱 꽝!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제대로 된 원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처럼 돼라!고 한 것은 바울이 삶에서 본이 되어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공로나 자격이나 행위로 나처럼 되라는 게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악하거나 성격이 못됐거나 아프거나 가난해도 바울처럼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처럼 말을 못 하는 이유는 전자동으로 내 행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용서를 처절히 구했고 며느리를 옳다 하고 조롱받았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입을 다물고 나처럼 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이란 조건을 붙입니다. 이것은 사명의 수고는 내가 다 받을 테니까 여러분은 이 복음 듣고 예수 믿고 구원만 받으라는 뜻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기적적인 선물인지 알면 알수록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이 선물 받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고 나처럼 되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니까 부족하고 형편없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당신도 나처럼 되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큐티하고 기도하며 결정하기까지는 묵상을 많이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것이 묵상의 결론입니다. 하루하루 말씀 붙들고 사는 것이 성령의 원함을 이루는 최고의 비결이며, 공동체에서 물어보면 환경으로도 역사를 하십니다. 비록 실수해도 성령의 원함이니까 보혜사 성령이 보호해 주시고, 은혜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목적지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은 우리의 구원,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는 잠시 결박당한 채로 있어야 할 때가 있고 억울한 일과 억울한 미움을 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빨리 석방되기만 바라는 것은 성령의 원함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원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행복만 원해서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치우친 내 원함을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에 주파수를 맞추고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원하는 성령의 원함을 가질 때 하나님이 나를 향해 품으신 그 큰 뜻을 이루는 인생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