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상소]
행 25:10~22
우리는 언젠가 구원일지 영원한 사망일지 모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심판받는 것은 영원한 심판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돌이켜 상소할 기회가 있어 굉장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수많은 심판을 통해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오기 전에 회개로 돌이켜 성령의 상소를 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상소에 대해 함께 듣겠습니다.
첫째, 인내의 때를 채워야 합니다.
바울은 열심히 선교하고 헌금도 지혜롭게 가져왔는데 그 결론이 감옥입니다. 21장부터 25장까지 2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잡히고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고 로마 군인에게 결박되어 영내에 감금되고 천부장에게 심문받고 벨릭스에게, 이제는 또 베스도 총독에게 조사받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고난이 오늘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모든 일을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고 감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바울이 드디어 로마시민의 상소권을 사용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 한번 쓰는 것을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했는지, 그 권을 쓰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했는지 우리는 이미 빌립보 감옥에서도 충분히 보았습니다. 인내의 때를 다 채운 뒤에 비로소 자기가 로마시민인 것을 밝혔습니다. 진작 쓸 수 있는 권리를 쓰지 않고 참다가 때가 차매 쓰니까 상소가 빛이 납니다. 이렇게 참고 인내해야 기도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상소와 기도가 빛이 나는 상소와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르짖어야 합니다.
상소한다는 헬라어로 에피칼레오인데 이 단어의 일차적인 뜻은 이름을 부르다.입니다.또한 간절히 부르짖는 것, 구원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부르짖는 것,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상소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통해 주님께 부르짖고, 나를 능히 죄에서 구원할 만왕의 왕이신 내 아버지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자꾸 사람을 찾고 방법을 찾고 나를 내어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최고 상급 기관인 내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마음으로 가이사에게 상소했습니다. 자기가 살려고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그 응답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황제에게 안전하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는 복음 때문에 응답된 것입니다. 내가 오늘 힘들다고 성경 다 내팽개치고 하나님이 없나 봐! 하는 것이 불순종이고, 날마다 큐티를 하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셋째,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기회를 주십니다.
베스도는 바울과 관련된 문제는 법대로 공정하게 처리했으나 악행을 증명할 수 없었고 예수라 하는 이의 부활을 주장했다는 것밖에 없었음을 밝힙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때 영혼의 떨림과 감격이 있지만, 베스도는 아무 감정 없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더라' 합니다. 성경도 알고 예수도 알고 큐티도 알지만, 감격과 떨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때문에 계속 충돌이 일어났었고, 또한 이런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정말 지겨운 괴롭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겨운 괴롭힘이더라도 내 힘을 빼고 열심과 판단을 멈추고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그것을 통과하면, 여호와께서 변명이 필요할 때는 변명할 기회를 주시고 상소가 필요할 때는 상소할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내가 당하고 있는 지겨운 괴롭힘에서 벗어날 기회를 스스로 얻겠다는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만히 서서 주가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비결입니다. 자신이 지겨운 괴롭힘을 당해도 할 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알면, 언제 어디서나 사과하는 마음으로 변명하면서 소망이요 부활이신 주님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확실한 자기 인식과 하나님 인식이 있으면 지겨운 괴롭힘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울에 관한 베스도의 보고를 다 들은 아그립바 왕은 나도 이 사람 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 남매는 겉으로는 다 가졌지만, 아버지는 최고의 정점에서 충이 먹어서 비참하게 죽었고, 권력의 냉혹한 현실 아래 비록 분봉 왕일지라도 실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버니게도 여러 남편을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왕위로도 재물로도 관계로도 채울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인 허무함과 죄악과 음란의 굴레에 잡혀있는 공허함이 있으니까 이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상소는 그 목적이 억울함을 풀고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이고, 성령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며칠을 묶여서 또 기다립니다. 말씀이 필요한 그 한 사람, 아그립바와 버니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로마에 가서 말씀을 전하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전도와 구원이 우리의 모든 기도와 상소의 목적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이거나 구원이 최고의 가치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부목자님의 나눔입니다. 1학기 종강 파티를 하는데 종교에 대한 주제가 나와서 전도하려고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분이 부목자님을 칭찬하며 순수하고 아주 착한 드문 사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바로 그때 전자동으로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고 내 안에는 음란이 있어 얼마 전 야동을 보았다고, 그래서 교회에서 회개하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했답니다. 그러니까 비록 거창한 복음은 전하지 못했지만 지질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항상 나에게는 칭찬할 거리가 하나도 없고,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태도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인내의 때를 채우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이 지겨운 괴롭힘 속에서 내 속의 지겨운 그 악함을 보며,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성령의 상소를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