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성관 목사님
요한복음 21:15-19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인생의 궤도를 이탈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표류하는 우주선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보다 내 뜻대로 살며 참된 목적을 잃고 방황할 때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은 중간궤도의 수정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본래 의도를 찾아서 삶의 방향성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인생을 통해 우리 함께 베드로가 어떻게 그 인생이 조정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인생의 궤도를 순탄하게 잘 진행했던 제자였습니다. 흔들릴 수 없는 방향의 나침반 되신 예수님이 옆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근본인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심이 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궤도와 우리가 가고 싶은 궤도의 방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의도하시는 그 궤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앙의 궤도로부터 이탈합니다. 자신의 렌즈로 예수님을 향해 한계와 제한을 두고 예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멀어지면 내면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본래 창조 세계에 주셨던 거룩함이 사라집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믿음의 궤도를 이탈한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은혜의 흔적이 있던 사람이 실패의 사건을 경험하면 결국 깊은 절망과 죄책감의 웅덩이, 수렁으로 자신을 끌어들입니다. 스스로 만든 동굴, 그 감옥 안으로 들어가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것을 향해 일어날 힘조차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회개하지 못하는 또 다른 실망 속에 살며 회피하고 도망쳐버립니다. 베드로도 이런 모습이 역력합니다. 의욕 상실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겨우겨우 고기를 잡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때 필요한 것은 중간궤도의 수정, 인생을 다시 재조정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한 잔상을 깨트리기 위해 그를 처음 만났던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은혜의 그 장면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처음 사랑, 처음 은혜의 장면을 동일하게 적용하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여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사랑과 열정의 궤도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5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기억보다 여전히 실패한 자기 모습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베드로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버거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한번 물으십니다(16-17절). 베드로는 실패한 자기 모습을 철저하게 깨닫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의 실패와 연약함을 모두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십니다(18-19절). 세 번째 질문 앞에는 더 침묵 가운데 근심하며 대답했습니다. 나의 고백을 내가 지킬 수 있을까? 여전히 의심하며 진정성 있는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철저하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그의 인생을 알고 계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본문은 저의 인생, 여러분들의 인생과 같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자 목회자의 자녀로 반듯하게 잘 컸습니다. 35세에 아버지께서 개척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습 목사입니다. 아버지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유학 중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인생의 궤도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습 목사이기에 더 잘해야 했고 사역의 기쁨보다 목회의 성공을 꿈꿨습니다. 노력할수록 마음은 더 공허해져 깊은 절망과 불평의 감옥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목회 3년이 되던 해, 갑자기 아버지께서 소천하시며 교인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회는 버텨야 하는 생존이 되었고 그때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또한, 척수염증으로 오른쪽 마비가 왔고, 간경화 진단도 받았습니다. 이 고난을 해석할 수도 없고 목회의 의욕도 상실했습니다. 목회를 계속할지 결단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결단할 내면의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가족과 함께 섬에 들어갔습니다. 파도가 거세게 치는 밤, 방파제 끝자락에 혼자 서서 큰 파도가 나를 휩쓸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로뎀나무에서 죽기를 간구한 엘리야처럼 죽음에 대한 직면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있는 등대를 보는 순간, 너는 빛이 아니다. 그런데 너는 왜 빛이 되려 하느냐? 너는 철저히 소망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내가 빛이다. 성령님의 강력한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찾아와서 위로해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억울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집으로 와야 한다. 내가 가면 너는 여전히 죄 된 본성이 가득해서 네가 한 줄 착각할 것이다. 네가 엎드려 기도하고 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전환점에서 아내의 지인이 보내준 《큐티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간증들이 저의 얘기로 들렸고 죄에 대한 현상과 실태가 제 마음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학 시절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했던 베드로의 게네사렛의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신과 거짓, 음란 등 하나님이 비춰주실 때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고백이 있던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바로 치유하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공부해서 얻은 하나님이 아니라 제 인생 속에 오셨던 그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 외에는 회복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매일 말씀 앞에 사로잡혀 살지 않으면 인생의 궤도는 또 틀어집니다. 말씀으로 회복되니 하나님의 말씀을 부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2년째 전교인이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소원입니다. 죽는 순간에도 《큐티인》을 옆에 둘 것입니다. 무너진 곳에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우리들교회가 더 성장하고 말씀 앞에 부흥하는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