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결혼]
창 23:1~4/25:1~6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안식 후 첫날은 사대복음서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즉, 부활절이자 바로 이때부터 주일 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부활 후 주님은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을 가장 먼저 보이셨는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이자 열국의 어미로 추앙받는 사라가 부귀영화를 누린 것 같지만, 사실 그녀도 막달라 마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창세기를 통해 사라가 어떤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에 부활의 스타이자 위대한 구원을 이루는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그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라는 남편 고난에 순종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라고 합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에 이는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고, 인격이 아닌 역할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성경의 명령은 십자가를 지는 순종이고, 우리를 가장 값지게 하는 일로 영육 간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부활의 비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라의 순종이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었기에 믿음의 후사인 우리까지 복을 받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여자는 더 좋은 재료인 뼈로 지음 받았는데, 재료가 좋은 쪽이 복종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사과해야 구원의 일이 빨리 이루어지는데 이게 영적인 원리입니다.
아브라함이 조강지처 사라와 첩인 하갈과 그두라 중 누구를 가장 좋아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려고 한 번은 바로 왕에게 또 한 번은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팔아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사라를 지키셨기에 구속사의 계보가 겨우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사라는 자신이 아이가 없는 큰 고난으로 본인의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들였는데, 하갈이 사라를 멸시했다는 말씀을 볼 때 아브라함은 하갈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은 후에도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첩으로 얻었고 아들 6명을 낳은 것을 보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라보다는 하갈을 좋아하고, 하갈보다는 그두라를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조카 롯을 구하겠다고 북부 연합군을 물리치러 목숨을 걸고 출전했습니다. 그 당시 아들도 없던 사라는 청상과부 될 뻔했고, 아브라함이 이기고 올 때 재물까지 한 핏줄인 롯에게 다 양보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라는 이렇게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은 남편의 고난에 순종했습니다.
둘째, 사라는 자녀 고난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총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자녀를 가장 좋아했을까요? 우리는 당연히 이삭을 좋아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 13년 동안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를 내쫓는 일 때문에 심히 근심하며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고 할 때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 원한다고 한 것을 보면 이스마엘을 더 좋아한 것 같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성령의 갈등 충만으로 이스마엘을 아픔 가운데 내보냈습니다. 약속의 자녀가 아닌 이스마엘 이야기가 성경에서 많이 할애된 것은 잘난 자녀가 안 믿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자녀인 이삭만 연약하고 이스마엘과 나머지 6명의 자녀는 다 강합니다. 그두라가 낳은 자식들을 사라가 다 보지는 못했다고 해도, 자기가 낳지 않은 자녀의 존재를 보는 사라에게는 깊은 슬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 총체적 고난으로 최고의 사랑이 동반됩니다.
사라는 총체적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갈을 들인 치명적인 실수를 인정하고 이스마엘을 내쫓는 구속사적인 적용 이후로 어떤 말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랄을 거쳐 브엘세바로 이주했는데, 사라는 127세에 헤브론 땅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헤브론은 약속의 땅에서 가장 중요한 땅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약속의 땅,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돌아가신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자 약속을 기억하고 약속대로 돌아가야 할 땅을 위해 매장지를 값을 주고 확정하면서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렇게 사라처럼 죽은 후에도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최고의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피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살피신다는 뜻을 가진 브엘라헤로이에 거주했는데, 사라는 이삭을 살펴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담대하게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으로 들였다고 합니다. 이는 이삭이 사라를 믿음의 어머니로 인정한 것이고, 사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방문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사라가 예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보이니 열국의 아비와 약속의 자녀를 만들어낸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라의 약속 있는 사랑으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알아보고 구별되는 적용으로 이삭에게 그의 모든 소유 즉 믿음의 유산을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부활 신앙의 배경으로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산 후 이삭의 신 결혼을 위해 자기 종에게 반드시 믿는 배우자를 찾도록 환도 뼈에 맹세를 합니다. 구속사의 순서대로 결혼의 준비, 만남, 인도, 결단, 참 결혼으로 인도받는 내용이 67절이나 나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아닌 이삭의 아내라고 표현 된 것을 보면, 우리는 며느리감 사위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아들의 아내, 딸의 남편을 구하도록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위대한 결혼은 예배와 큐티와 용서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이고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가 사라처럼 인생 항해의 끝이 주님이 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서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