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택함]
행22:9-16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실수로 넘기 힘든 고난이 닥쳐도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신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택자입니다.오늘은 성령의 택하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9절에 사람들은 빛은 보고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하는데,옆의 사람들이 들었던 소리는 사운드였고 바울이 들은 소리는 보이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즉,택자는 어떤 말씀이라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습니다.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본문10절에서 바울은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합니다.그러자,주님은 직전까지 바울이 분노에 떨며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려고 가던 그 곳,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십니다.성령의 말과 성령의 간증을 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갑자기 목적지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그저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곳ㅡ나를 환영하지 않고 무시하고 무시당할ㅡ그곳을 향해 여전한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본문11절에 바울은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갑니다.바울은 주님을 만났는데,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은 말씀이 안 들리는 공동체인 것입니다.말씀이 안 들리는 내 식구,내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모의 과정을 겪어야 됩니다.바울은 하나님의 광채에 눈이 멀어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반대로 세상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 보입니다.이렇게 세상이 안 보이는 사람과 하나님이 안 보이는 사람이 함께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좁은 길입니다.
둘째,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보고,듣게 하십니다.
바울이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가다 보니 힘을 주는 지체를 만나게 하십니다.그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체포하려던 제자 아나니아 였습니다.그렇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를 싫어하니 아니나아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지 않고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즉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과 그리스도인은 원수가 아니라는 의미를 전달한 것입니다.오늘 본문에는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구절이 빠져 있습니다.그것은 유대 군중들이 바울의 고난에는 관심도 없고 듣기도 싫어하므로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과감히 생략한 것입니다.이렇듯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내 고난을 함부로 아무 때나 간증하면 안 됩니다.본문13절에다시 보라는 말은 '사울아 너는 위를 향해 봐라,보이는 것의 너머를 좀 봐라,이 눈이 먼 사건 가운데 본질을 보라'는 것입니다.이렇게 말씀이 들리니까 시각이 달라지고,지금까지 살기로 충만했던 얼굴이 은혜로 바뀌었습니다.아나니아는 눈을 뜬 사울에게'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했다'고 말해줍니다.여기서택하다는과거에 너를 단번에 택했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아주 뜻 깊은 단어입니다.이 택하심을 특별한 단어로 강조한 이유는 예수님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예수님의 삶을 보고,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땅에서 뭔가 대단한 보상이 있는 선택을 늘 바라겠지만 세상의 택함이 아닌 성령의 택하심을 받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바울을 택하셔서 맡기신 임무는 무슨 거창한 계획이 아닙니다.단지 모든 사람 앞에서 바울 자신이 알고,보고 들은 것,즉 주님의 삶과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증인이 되라는 의미는 순교자를 말합니다.왜 순교라고 할까요?증인으로써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하는 진실성인데,문제는 진실하게 증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기복적으로 복 받고자 예배드리고 싶은데,증인은 손해 보기로 작정해야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증인으로써 사명을 감당할 때에는,그때마다 주저하게 됩니다.그것은 결국 내 안에서 일어나는,나 때문에 주저합니다.결국 우리는 익숙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게으름,더 많이 차지하려고 하는 욕심과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한 두려움,그리고 자신이 제일인 줄 착각하는 교만함 때문에 주저주저 하는 겁니다.사실 이렇게 갈등이 충만한 것이 성령 충만이고,주저한다는 것 자체가 사명 감당을 해야 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또한 주님은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로 처방을 내려 주십니다.주님이 나를 일으켜 주시지만,나도 힘써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야 합니다.택하심을 받은 우리 모두는 각자 일어나야 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의 은혜에 주저하지 말고 응답해야합니다.또한 세례는 결혼식처럼 내가 예수님께 택함을 입었기에 택자로 살겠다고 공동체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 입니다.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임을 주변에 알림으로 죄의 유혹에서 보호를 받으며 성령의 택함을 더욱 완성시키는 겁니다.결혼식을 통해 하나 된 가정은 결코 깨서는 안 됨을 세례를 통해 알려주십니다.이런 것이 성령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 누릴 축복인 줄 믿습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어떤 부목자님이 자신이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분신자살을 하셨다고 합니다.이후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면서 매 맞고 천대받으면 자랐는데,목장예배에서 아버지뻘 되는 목자님과 집사님들의 나눔을 통해 아버지가 이해가 되었고,그 아버지 때문에 악하고 음란한 자신이 예수 믿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아나니아 같은 목자님께서'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집사님에게는 아버지가 순교자이시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고 합니다.평생 동안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세상을 향한 분노로 살아왔는데 이 말씀 한마디로 아버지의 자살사건이 해석이 되고 새로운 눈이 떠졌다고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이처럼 다시 보게 되어서 우리 예수님을 알고,보고 듣게 하는,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이 세상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결코 볼 수 없는ㅡ네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구나!ㅡ자신의 죄가 보이니 택자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견인해 가시는 줄 믿습니다.이것이 바로 성령의 택하심입니다.이렇게 주님이 손 내밀어 주실 때 나의 손과 발을 포개어 일어나,성령의 택하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