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명]
행 20:22~24
영국의 청교도들은 성령의 작정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사명의 길로 떠난 후 도착해서 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성령의 안아주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성도는 성령의 작정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오늘은 성령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에 매이는 것입니다.
성령에 매이기 전 바울은 율법과 전통과 고정관념에 매여 있었고, 주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박해하며 자기 열심에 빠진 죄인이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죄인으로 각자의 죄에 매여 있습니다. 이 죄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려면 돌고 돌아야 합니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로마인데, 많은 섬을 거치고 돌아서 정반대 방향인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매여의 시제는 완료형으로 이미 성령에 매여 지금까지 쭉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언한 것과 에베소에 들르지 않을 만큼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것이 동일하게 성령에 매여 성령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면서 궁극적으로 선교 보고를 통해 교회를 깨우고자 했습니다. 나와 안 통하는 식구, 땅끝 선교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로마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한 일이 아니기에 예루살렘을 향한 심령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되어 하나님과 독대하며 사명을 위해 기도하고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각종 죄에 매여있는 우리의 인생에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똑같은 우리의 상황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합니다. 성령께서 사건마다 내게 은혜로 증언하시는 복음을 가족과 이웃에게 매여있는 나의 삶과 간증으로 증언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명입니다.
둘째, 죽어지는 영성입니다.
23절과 24절에 증언하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성령에 매인 바울도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고 합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시는데,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동족 구원에 빚진 마음, 예루살렘에 대한 끝없는 부담으로 가는 이 길 끝에 마주할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로마로 데려가는 최고의 환경이자 최고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 지름길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 길을 통해 한 걸음씩 가게 하십니다. 고통이 성령의 매임이 되면 내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잘 통과할 수 있고, 나의 결정이 성령의 작정이 되면 사명이 되어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바울은 최종 목적지가 분명 하기 때문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바울이 마치려 하고 완수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달려갈 길,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최종목적지가 분명하기에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닳아버리도록 지체하지 않고 내가 달려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명으로 번역한 단어는 디아코니아로 섬김, 수종 든다는 뜻인데,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과 무관하게 주님과 말씀을 수종 든다라는 의미입니다. 삶의 마지막에 주님처럼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역사가 있다면 평생 무시를 당한다고 해도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예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고통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사명지로 돌아가게 합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지만 죽어지는 영성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남은 자를 반드시 허락해 주십니다.
오늘은 여호수아 6장으로 남편의 구원과 사명에 관한 저의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6일간 침묵하며 하루 한 번씩 돌고, 7일째는 일곱 번 돌라고 하십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끝이 안 보이는 성을 순종하며 도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7일째 되는 날은 말씀에 따라 더 기도하면서 더 애통하는 마음으로 일곱 번을 돌아야 하는 힘든 날이고, 총합이 13인데 이 숫자는 내 힘으로는 감당 못 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도 말고 에스겔처럼 벙어리가 되어 침묵하라고 하셨고, 에스겔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가신 것처럼 남편을 하루아침에 데려가셨습니다.그때부터 남편 앞에서 벙어리가 되어순종하며 침묵했던 일들을 지금까지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사명감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침묵하며 여리고를 돌 때 네가 이래도 돌겠느냐? 할 사건이 많았습니다. 그 중 칠일째 가장 힘들었던 침묵 순종과 벙어리 기도는 남편이 가기 바로 일주일 전, 주일 예배 다녀온 저에게 새로 산 옷에 샴푸를전부 다 들이부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기도한다고 했지만 결국 눈치 보며 무서워하고 사랑 없는 내 죄를 회개하며 조금씩 자유함을 생겼습니다. 그날 읽었던 에스겔 3장, 에스겔 14장, 고린도후서 4장 말씀으로 내가 남편 주인의 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무릎을 꿇고 '나 같은 것과 살아주어서 너무 고맙고 나는 정말 당신의 종이다'라고말씀대로 적용했습니다. 이때 저는 남편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고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맘으로 적용했기에 남편의 변화와 상관없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샴푸 사건 후 7일째에 남편의 육적 여리고가 무너진 급성 간암 사건이 왔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 날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외친 것처럼 '당신이 회개하고 천국 가지 않으면 나는 살 소망이 없어요.'라고 밤새 외치고 부르짖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산부인과 의사로 행했던 낙태 수술의 죄를 고백한 후 주님을 영접하고 다섯시간 만에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매임으로 여전한 방식의 침묵 순종과 벙어리 기도가 철벽 여리고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구절은 6장 전체에서 20절에 딱 한 번 나오는데 이것은 무너지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날마다 구별된 가치관과 말씀 중심으로 사는지, 예배 공동체를 앞세웠나 보십니다. 저는 남편 구원이라는 여리고 성을 열세 바퀴나 돌면서 전적인 나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여전한 방식의 성령의 매임이고 성령의 사명으로 가는 비결입니다.
이 여리고가 열리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힘든 일이 올수록 하나님은 나에게 사명을 크게 주시려고 작정하셨음을 알고 여전한 방식으로 그 환경에 잘 매여있으려 작정하면 그게 사명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성령의 사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