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작정]
행 20:13~21
오늘은 성령의 작정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배를 탄 일행과 앗소에서 만나기로 한 바울은 32km 되는 먼 거리를 혼자서 걸어가고자 작정합니다. 성령의 안아주심으로 죽었던 유두고가 살아났지만, 바울은 앞으로 죽는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고 그때부터 예수님 죽이는 모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렸기에 죽이고자 하는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바울은 혼자서 걸으며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처럼 바울도 같은 응답을 받으며 더욱 눈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둘째, 지체치 않아야 합니다.
앗소에서 만난 바울과 일행은 낮에는 항해하고 밤에는 정박하며 배에서 내리지도 않고 예루살렘으로 급히 갑니다. 앗소에서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까지 유서 깊은 곳을 지나칩니다. 심지어 3년 가까이 사역한 에베소조차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본문의 지체하다는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없앤다는 뜻으로 바울은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지체하지 않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린 이후, 엄청난 전도 열매를 나누고 이방 교회들이 모아준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최종 목적은 복음 전파였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거기를 왜 가는지, 지금 얼마나 와 있는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아는 것이 최종 목적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의 태도이며 그래야 때마다 성령의 작정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눌러앉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나 집착하는 것 혹은 중독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있으면 인생을 헛된 곳에서 지체하지 않고 성령의 작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독대하고 기도하며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물으니 지체할 곳, 지체하지 않을 곳들을 시간 낭비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셋째, 거리낌 없이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유언 같은 고별설교를 합니다. 바울은 '여러분도 아는 바니'(18절) 라고 시작하며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한결같이 보여준 주님을 섬기는 삶을 너희들이 안다고 합니다. 특별히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19절)을 참았다고 합니다. 요즘 유대인의 간계는 하나님도 동성애자들을 사랑하신다.라고 하며 동성애는 죄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서 법으로 제정하려는 것입니다. 참된 인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만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가 죄라고 말해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모든 겸손과 모든 눈물로 참고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어로 보면 주를 섬긴 겸손, 주를 섬긴 눈물, 주를 위한 인내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자신의 수치와 약함을 드러내는 회개함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매 맞고 옥에 갇혔어도 위축되거나 주저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전했듯 장로들도 이렇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소식이며, 듣는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가 따르면 좋은 소식, 단 소식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녀도 유대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쓴소리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전적 무능, 전적 부패의 죄인이라는 자기 인식과 하나님에 관한 바른 인식에서 비롯되는 실존적인 인식이 없으면 행위 구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룩한 강단에서 어찌 더러운 인간의 죄 얘기를 하냐! 앞으로 또 죄를 지을 것인데 그런 간증은 하지 마라!'고 합니다. 지난주일 큐티 말씀 에스겔 47장은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제일 먼저 회개의 제단인 번제단을 적십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내어놓으면 주님이 그 성전에서 제일 먼저 씻어주십니다.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유다의 간증, 밧세바와 불륜한 다윗의 간증 등 선진 들이 이미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증하면 우리 안에 죄를 끊을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백하고 자랑할 때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랑은 우리 강함이 아니라 약함입니다. 큐티는 바로 이것을 매일 새롭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THINK의 과정이며 그래서 날마다 작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나누는 것이 처음과 끝이 같을 수 있는 비결이며 곧 성령의 작정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큐티 훈련도 받고 남편의 두 집 살림을 인정한 집사님께서 시어머니의 간병을 두고 요일을 정해서 첩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는 날에 첩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니 참을 수가 없어서 핸드백을 집어 던지고 싸웠다고 합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제게 전화를 했는데 '그때야말로 복음 전할 기회가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면 주를 섬기는 눈물과 겸손으로 인내하고 그래야 하지 않아요?' 하며 야단을 쳤습니다. 정말 힘든 것이 자존심 문제 같습니다. 자존심 상할 일이 왔을 때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는 주님을 섬기는 겸손과 인내, 눈물이어야 됩니다. 사건을 통해 주님을 알아 가고, 예수님처럼 수치와 조롱을 잘 견디는 것이 간계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제가 부족한데 지적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말을 습관적으로 하며 무시하는 환경이 올수록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생각으로 연결이 되어야 지혜가 생기고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는 성령의 작정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작정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사명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지경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가는 우리가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체하지 않습니다. 최종 목적지를 향해 지체치 말아야 할 이유는 인내와 눈물과 겸손으로 거리낌 없이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훈육의 가르침보다는 회개와 믿음의 간증을 하며 수치와 조롱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는 성령의 작정을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