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소동]
행 19:21~31
성령의 경영을 하고 제가 떠났는데,성령의 소동이 따라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성도들의 기도 힘으로 미주 서부 집회를 잘 마쳤고,설교할 기회를 주신 모든 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오늘은 성령의 소동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세상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이 일 후에에서 이 일은 바울의 양육으로 에베소 사람들의 회개 후 죄를 자복하고 그 마술책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우는 적용입니다.불태워진 그곳에 사명이 채워져야 하는데,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구체적 사명을 선포합니다.작정,즉 경영은 헬라어푸뉴마를 써서 성령 안에서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이는 매일 듣는 말씀 안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로마는 내 가족을 죽인 원수,내 조상 기독교인들을 사자 먹이로,그리스도인들의 시체를 등불로 사용해 거리를 밝히고 핍박하고 죽이고,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 달게 했습니다.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경영으로 용서하고 품고 반드시 보아야 하리라며 로마에 복음을 전하겠다 합니다.그런데 지금 나에게 대적이 많아 소동이 일어난 것은 지금 내 삶에 사명이 주어졌고 생명이 태동하여 자라는 것이며 이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천하를 소동케 하는 가장 큰 소동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세상의 왕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든 아기를 죽이며 일어났습니다.믿는 자에게 끝없이 일어나는 소동은 나를 죽이려는 소동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있기에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둘째,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매년5월이 되면 에베소에서 풍요와 다산,축복을 상징하는 아데미 여신 축제가 열립니다.이 신전은 고대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데,전 세계 사람들이 와서 아데미 신상을 샀고,전쟁이나 여행 시에 소지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따라서 이 신상을 파는 은장색들의 수입이 매우 컸습니다.어느 날 은세공업자이자 상인조합의 회장 같은 사람격인 데메드리오가 이 세상의 도의 대변자,주동자로 나섭니다.수입이 줄어든 원인이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아데미 여신은 우상이라고 하는 그 가르침과 연관 있음을 확인합니다.근면,성실,부지런한 사람일수록 그 선한 가치 뒤에 감추어진 자기 실체인 타락한 죄인의 실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사실 은장색들을 움직이게 했던 동기는 돈이지만,경건한 예배와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심을 포기한 사람들로 쉽게 비칩니다.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이를 뚫고 들어가 감추어진 돈 우상을 드러냈습니다.이렇게 성품과 노력 아래 감추어진 욕심과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의 소동,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큰 지진 같은 사건이 옵니다.그러나 데마드리오는 이 소동의 원인을 아데미 여신이 무시당할 뿐 아니라 아데미 여신의 위엄도 떨어진다는 명분의 포장을 합니다.이 포장이 세상경영의 특기이고,이 소동에는 포장전략에 능한 주동자가 있습니다.에베소 직공과 영업하는 모든 자는 선동에 이끌려 성공과 축복과 다산의 신을 외치는데,성경에서는 요란하다고 합니다.이 요란하다는 것은 원어적 의미에서 여러 액체를 함께 뒤섞어 붓는 것을 말하는데,구별할 수 없는 그런 극심한 혼란 상태를 뜻합니다.이 혼란은 창세기11장9절에 바벨탑 사건의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거기 있던 혼잡과 같은 상태가 지금 에베소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나 군중이 일제히 달려 들어갔다고 합니다.오직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도를 반대하려는 한가지 목적을 놓고 선동한 것이지만,이 세상의 말을 들은 결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요란입니다.이 세상 전문가의 말보다 믿음으로 내가 목장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게 있습니다.
셋째,내가 죽어야 됩니다.
소동 가운데 바울과 같이 다니며 수행하는 제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군중에게 붙잡힙니다.이러한 세상 소동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는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말씀의 공동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이때 바울은 그들을 구하고자 하나 불같은 분노와 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같이 맞서 싸워서는 안 됩니다.제자들과 아시아의 관원들이 만류하는 이유는 바울이 그 소동으로 들어간다면 로마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모든 일은 구원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엄청난 소동이 있었고,이 모든 소동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싫어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바울이 이 소동의 정체를 알게 되자 자기 생각을 꺾어 옆 제자들의 말을 듣고 백성 가운데로 안 들어갔습니다.이렇게 내 생각을 꺾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결국 내가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으로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이 소동을 멈추는 비결입니다.성령의 경영을 막고 있는 것은 십자가를 거스르는 바로 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적용을 하면서 내가 죽고 이 소동 속에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성령의 소동이 되어서 생명이 탄생되면 복음이 편만하게 가게 됩니다.
이혼 소송을 하는 목자님의 공동체 고백입니다.구속사의 말씀 공동체 덕분에 아내를 정말 단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반대의 영으로 나갔다고 하십니다.그런데 결정적인 이혼 사유가 없어 보이는 이 가정에 부부의 문화가 다르기에 살 수 없다고 판결이 내려졌다고 합니다.이분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혼당했지만,결국 모든 일이 구원사건으로 여기기에 내 안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고 하십니다.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죄 됨을 보지 못하면 죽을 수가 없는데,내가 죽어서 이 가정을 지키고 최고의 가치인 가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