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작별]
행 18:18~23
여러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별의 순간은 언제 입니까? 바울도 교회를 세우며 여러 도시를 다닐 때마다 작별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작별에 대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더 인내하며 머문 후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문제로 주신 법정 사건을 통과한 바울은 고린도에서 여러 날 더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했다고 합니다.(18절) 모든 것을 갖추고 음란하기까지 한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일이 바울에게 쉽지 않았고, 게다가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죽이기 위해 고발했습니다. 바울은 이제껏 지나온 도시에서 늘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가장 악하고 음란하고 영적으로 어둡던 고린도에서 법정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바로 고린도를 떠나지 않고 여러 날 더 머물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갓 태어난 고린도 교회 성장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찰 때까지, 즉 법정 앞에서 모두에게 얻어맞는 수모를 당한 회당장 소스데네가 교회로 들어와 구원받고 바울의 동역자로 양육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문 후, 바울은 고린도의 형제들과 작별하고 수리아로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떠나야 할 때가 있을 텐데, 항상 복음 때문에 떠나면 또 만남을 허락해 주십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인내하면 영적 진실성이 드러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되었을 때 성령의 작별을 하게 해 주십니다.
둘째, 자발적인 서원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18절) 한 사람이 머리 깎는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을까요? 더구나 바울은 대머리였습니다. 누가가 이것을 기록한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바울은 나실인으로 서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실인들은 자신을 구별되게 하나님 앞에 바쳤고, 서원이 종료될 때에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두었습니다.(민6:18) 그때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고 머리도 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원이 끝날 때 자신의 머리를 깎고 화목 제물 밑 불에 머리카락을 태웠습니다. 여기서 서원은 구별하다, 성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제사의 종류는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5가지가 있는데, 그 중 화목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마음으로 서원하여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서원은 화목제의 하나로서 죽어야 할 나를 위해 흠 없는 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완성된 구원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적 서원은 야곱의 십일조, 입다의 번제물처럼 조건부가 아니라 어떤 완성된 사건이 감사해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루기까지 내가 포도주를 가까이하지 않고 더럽고 음란한 것들을 만지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겠어요, 거룩하게 살겠어요.'하며 은혜에 감사해서 바울이 자신을 드리니 하나님은 법정의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문제 해결만 바라지 않고 구원을 생각한 바울처럼, 서원은 감사의 예물로 나를 드리며 구별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의 청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떠난 바울 일행은 2차 전도 여행의 원래 목적지였던 에베소에 도착합니다.(19절) 이 곳은 로마로 가기 전 가장 힘든 곳, 우상의 세력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후 바울은 쉬지 않고 회당을 찾아 복음 즉 성경을 펴서 구속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 설득이 된 여러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지만 바울은 거절했습니다.(21절) '만약 하나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말은 시제가 능동태 미래형으로 막연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것에 대한 바울의 서원과 각오와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성령의 서원을 한 바울은 그동안 자신의 실패와 연약함과 두려움의 한계 가운데에서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앞에 두기 시작했고, 자신의 모든 바램과 소원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빨리 작별하고 싶었던 고린도에서는 더 여러 날 머물렀지만 처음부터 오고 싶었던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작별합니다. 구원보다 이익이 목적이 되면 분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 함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적용할 때 알 수 있게 됩니다. 이혼, 중독은 구원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므로 작별을 해야 합니다. 죄를 보는 공동체에서 날마다 서로 나도 죄인, 너도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적인 대안입니다.
넷째, 제자를 굳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떠난 지중해를 가로질러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22절) 그 후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올라가서 지도자들을 만난 후 자신의 사역 본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데, 육지와 바다로 이동한 거리는 대략 4,500km 정도이며, 3년 이상 걸린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안디옥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앞서 두 차례 전도 여행 때 세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심방하기 위해서 3차 전도 여행까지 떠났습니다.(23절) 바울은 오랜 기간 여러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각종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 믿음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깨달았습니다. 이런 흔들림을 멈추게 할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임을 깨달았고, 그 말씀으로 그들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바울은 또다시 작별을 하고 양육의 3차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작별은 힘든 일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거나 숨기 위한 떠남이 아닙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지체를 굳건하게 하러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는 떠남, 성령의 작별입니다. 인간의 작별은 끝과 마지막이지만, 성령의 작별은 새로운 사명의 시작과 처음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작별을 멈추고 성령의 작별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어느 부목자님의 딸이 부정맥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이후부터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어느 날 밥을 먹던 중, 대수롭지 않은 일에 발끈하며 부목자님에게 욕을 쏟아부었습니다. 간신히 화를 누르고 조용히 타이르며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악몽을 꾸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새벽 4시경 아내를 깨워 당신이 중간 역할을 못 해서 자식이 아빠에게 욕한 게 아니냐며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대나무막대기로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거실로 나와 가방에 있던 공황장애 약 봉투를 손으로 움켜쥐고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약 봉투를 뜯어 입에 털어 넣으려 할 때, 아내가 지금까지 구원과 사명을 잘 전해왔는데 아깝지 않냐 지금 죽으면 그 사명은 어떻게 할 거냐며 울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얼음물을 자신의 몸에 확 끼얹듯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무 말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자식들과 아내에게 한 짓이 20년이 훌쩍 넘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내가 아직도 멀었다고, 내 속의 악과 작별을 못해서 한계상황이 오니 믿음의 바닥이 드러났다고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후에 딸에게서 미안하다며 문자가 왔고, 그 문자를 받고 모든 게 내 삶의 결론인 것을 알았다고 부목자님께서 고백하셨습니다. 공동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누는 것이 바로 성령의 작별입니다. 우리 모두 다 각자의악에서 작별하여 그 모든 것이 성령의 작별이 되어 중독을 끊어내고 가정을 지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