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문제]
행 18:12~17
성령의 권면으로 성령의 백성이 되었지만, 문제는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성령의 문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 일제히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유대인 무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 재능, 로마의 법까지 이용하여 일제히 바울을 대적합니다. 여기에서 공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어디나 능력이 왕 노릇 하면 다 망하게 됩니다.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조건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샌델이 말하는 조건의 평등은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여러 계층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죄를 모르면 차별 없는 나눔은 어렵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나누는 우리들 교회 목장이 샌델의 이론을 실행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 부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모두에게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지만, 같이 모여 서로를 체휼할 수 있는 것은 죄인의 입장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서 매를 맞고 쫓겨나도 사랑받고 사랑하며, 집이나 직장에서 당신의 기여가 얼마나 큰지, 그곳에서 당신이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주지시켜주는 공동체를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어설픈 문제로서는 내 자신의 죄성을 결코 알 수 없기에 모든 문제가 일제히 일어나야만 완악한 내 죄가 깨달아집니다.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대적하는 문제가 성령의 문제라는 것입니다.똑같은 심판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사건이 되듯 똑같은 문제 속에 말씀이 들리면 그 문제는 성령의 문제가 됩니다.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한 내용을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나를 죽이려고 일제히 덤벼드는 수많은 문제를 살펴보면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 별것 아닌 문제들입니다.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예수를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통해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이 성령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의외의 도움으로 풀리게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전도한 사람들과 고린도에서 이제 막 믿게 된 지체들 그리고 아가야와 마게도냐에 세웠던 교회들을 위해 입을 열어 말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 갈리오가 바울을 대신해서 대답합니다. 이처럼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대신 말할 사람을 준비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갈리오가 놀랍게도 재판을 기각시켜버리고 무죄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중요한 판례로 남게 됩니다. 계속 바울을 매 맞게 하시고 옥에 갇히게 하시고 이번에는 또 무죄로 판결이 나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그러면 매 맞는 것은 저주이고, 무죄는 축복인가요?성경을 차례대로 읽는 이유는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순서에 있다는 것입니다. 맨날 좋은 것은 축복이고 나쁜 것은 저주라고 하면 성령의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갈리오라는 사람의 역할은 이 땅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를 기각한 일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의외의 도움을 준 갈리오의 판결은 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에우리들 교회도 정말 말씀 묵상, 가정 중수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18년째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마다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손길들을 허락하셔서 말씀 묵상을 도우시고 가정들을 도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내 입을 닫는 것은 내 생각이 죽어질 때 가능하며, 이것이 이 시대의 순교입니다. 내 자아가 죽어지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고, 이때 나의 모든 문제가 성령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셋째,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닥친 문제가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의 문제라면 너희의 문제이지만, 구원의 언어와 명칭과 법의 문제라면 성령께서 처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성령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결정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언어와 명칭과 법에 집착합니다. 단어 하나에 이혼하고, 명칭 하나에 분을 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법 하나에 분노합니다.남편의 오랜 각종 중독, 폭언, 폭행, 노래방과 도우미와의 바람 사건으로 우리들교회에 오신 집사님의 나눔입니다. 이 집에서는 노래방과 도우미는 금기어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남편이 나가서 2년 동안 끊어온 술을 마시고 도우미에게 거금을 쓰고 들어와서는 미안함도 안보였습니다. 어떻게 나를 또 배신하느냐는 잔소리에 남편이 혈기를 부리고 의자와 선풍기를 집어 던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급기야 식칼까지 들고 위협을 하는 사건이 생겨 경찰에서 조사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Think 양육을 받는 중에 믿음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네가 사과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남편에게 용기를 내어,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이 화가 풀려 자기도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 후 남편이 처음으로 목사님 책 여러 권을 완독하고,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서로가 죄인임을 보게 하시는 이것이 조건의 평등이며, 우리를 성령 충만한 문제로 가져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너희의 언어가 아닌 말씀에서 듣고 배운 구원과 성령의 언어로 말하니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해결되었습니다.또 한 목자님은 해외 선교 중 어린 딸의 혼전임신 사건으로 귀국하여 50세에 청소직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딸에게 두 아들을 주신 것, 집을 주시고 목자로 불러 주신 것, 무관심했던 사위가 손자들을 찾는 것, 가출하여 돈도 주지 않는 사위가 딸의 생일에 치킨을 보내 준 것, 사위의 이혼 의지가 느슨해진 것, 딸이 이혼은 안 하겠다고 한 것에 모두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이야말로 성령의 문제가 되었습니다.매 주일 목장에서 이런 나눔이 울려 퍼지니 모두 차별 없이 나누고 진영논리, 지역감정, 부자 빈자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한 이렇게 나누는 것이 세계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목장이 공동체주의적 복음주의 같습니다. 이 세상은 공정할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만이 공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구원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고 성령의 문제가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