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룻1:1~22
집으로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정말 가정으로 돌아온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그 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기 원해서 저의 신앙고백인 룻기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한 영혼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모두의 기도가 응답되길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오려면,
흉년은 시기마다 종류별로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흉년이 섞여서 골고루 오며 가며 저도 여러분도 내 아버지 집으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은 그 땅에 누구의 치리를 받는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나에게 항상 하나님이 왕이 되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악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이고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은 후에 예수님이 오실 땅입니다. 모압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찬송의 떡집에 거해야 할 그 가족은 묻지도 않고, 돈이 많다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모압 지방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이민을 갔습니다. 이 집은 하나님 자리에 가족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지도자 때문에 징계의 수단으로 흉년이 왔는데 해석을 못 하고, 정신 못 차리고 가족을 위한다며 환경이 좋은 모압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엘리멜렉은 여호와는 나의 왕이다 아내 나오미는 희락과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건한 가정에 흉년이 오니까 믿음의 실체가 딱 드러납니다.
둘째, 2차 흉년을 허락하십니다.
이 집은 예수님이 오셔야 될 가정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매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남편이 죽었습니다. 프로이드의 대상 상실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남편 죽은 것 하나 집착하다가 우울증, 갑상선 항진에 대장암 걸리고, 그런 엄마를 지겨워하는 아들들이 가출, 게임, 학교 안 가고 그러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흉년이 오면 해결이 아닌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됩니다. 내가 과부 된 것만 불쌍하다고 평생 모두를 망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죽어도 이렇게 남았으며를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영적 계보를 이어갈 두 아들이 남았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고 지금이라도 찬송의 떡집으로 돌이키는 것이 남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도 30대에 과부가 되었고 여러 가지 흉년이 많았지만, 남편의 죽음에서 남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인물인 나오미는 2차 흉년 때까지 남겨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모압 땅에서 회복되어 짠하고 보여주겠다면서, 찬송의 떡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들들에게 모압 여인들과 불신 결혼까지 시킵니다. 오직 모압 사람들과 교제하며 모압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혼하고, 부도나고, 바람 피우면 교회를 떠나고, 그다음에 다시 회복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데 교회는 로터리 클럽이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으로 3차 흉년이 왔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집이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게 내버려 두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남았더라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이제 남은 것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그냥 모압을 떠날 수도 일어날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3차 흉년이 오니까 여섯 절 만에 처음으로 지금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여호와께서 전적인 은혜로 나오미를 방문하셨습니다. 일어날 힘이 전혀 없지만, 이 자리에 오신 한 사람이 있다면 이제 여호와께서 방문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찬송의 떡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냐고 그러지만, 말씀이 들리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하여 세상 가치관인 모압, 모든 집착과 중독에서 완전히 유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불쌍한 이방 여인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한계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드디어 3차 흉년에서 나오미에게 남은 것이 보이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저도 죄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땅끝까지 낮아지니까 제 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임하니 모든 것이 해석이 되었고, 해석이 되니 해결이 되었습니다. 또한 남겨진 것을 보게 되니 모압의 세상 가치관에서 유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결같이 걸어오게 하시고, 혼자가 되어서 34년을 살아도 결국은 지금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넷째, 그 흉년이 상처가 되어 별이 되게 하십니다.
두 사람이 베들레헴 떡집에 왔는데 모두 반겨주기보다, 그렇게 흉년 때 떠나더니 남편과 아들이 죽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나오미는 기쁠 희 희순이고 마라는 쓸고 고순이입니다. 나를 희순이라고 부르지 말고 고순이라고 불러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직면하고 옳소이다 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두 불쌍한 사람이 온 것 같지만 이것은 너무나 분수령적인 구속사의 중요한 일입니다. 룻이 바로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신앙적 결단을 하는 룻을 나오미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지는 자기는 재혼도 안 하고 자식 낳는 것과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르바인 다른 며느리는 울며 입맞춤하며 교양 있게 헤어졌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이렇게 영원한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굳게 결심할 수 있었지만, 나오미와 룻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둘이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이 나오미가 주께로 돌아오니까 3차 흉년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가장 기쁜 그 만남을 허락한 것입니다. 영적 동반자 사이에는 어느 한 쪽은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끄럼 없이 나오미의 이야기를 다 했더니 추수가 시작되고, 1절에서 시작한 흉년이 마지막 절에서 풍년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미워서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간증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흉년이 풍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집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구속사의 주인공이 되어서 흉년이 풍년이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