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임종덕 장로(전 미국백악관 안보비서관: 닉슨~레이건 대통령)
여호와를 경외하고 늘 기도하신 친어머니와 양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간증을 하기 원합니다. 중국 용정에서 아버님은 독립운동가로, 어머님은 용정조선학교를 세우시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저희 삼 남매를 돌보느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잠들기 전 각 자녀를 붙들고 기도하실 때 유독 제 차례에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 영광을 받는 아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고 어머니의 눈물방울은 제 이마에 계속 떨어졌습니다. 7살이 되던 어느 날, 중국 여자애에게 빵을 조금만 달라고 해서 먹는데, 자기 발을 벌리더니 그 아래로 지나가면 한 번 더 준다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멀리서 보신 어머님이 절 부르셔서 제가 배고픈 것도 당신의 죄라고 울며 기도하신 후 고려의 정몽주 충신에게 그 어머니가 읊은 백로가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제가 소나무 위에 창공을 나는 백로가 될 것이니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타일러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제 안에는 그런 존재감이 깊이 심어졌습니다. 1949년도에 서울에 온 후 곧 6월 25일 전쟁이 터졌습니다. 저는 중학교 일학년이었는데, 학생의 키를 기준으로 북한 의용군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한 선배가 학교에 불을 질러야 모두 도망갈 수 있다고 해서 시킨 대로 하고 잡힐까 두려워 집 나무 위로 올라가서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나무 위에서 인민재판을 받아 부모님이 총살당해 바로 세상을 뜨신 것을 보았고, 울면서 13살 나이에 홀로 고아가 되어 정처 없이 피난 갔습니다. 저는 선교사님들에게서 배운 영어 몇 마디로 미군 부대를 쫓아다니며 돌봄을 받고 지내다가, 부대가 적군의 공격으로 모두 전사하는 바람에 보육원에 들어갔습니다. 우연히 원장의 만행을 보았지만, 밖에 나가면 굶어 죽는 탓에 그냥 지내던 중에 어린 동생이 맞아 죽는 사건을 계기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보육원의 많은 아이들이 절 쫓아와서 함께 지내던 차에 거지 왕자로 소문난 김춘삼 씨를 만나 비어 있는 방공호에서 지내면 된다는 배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로 약이 없어 19명의 아이가 죽는 사건 앞에서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후부터는 저는 도둑과 절도범으로 타락했습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소매치기 대상을 찾던 중, 미국 공군 장성이 탄 승용차 한 대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비가 와 혼란한 틈을 타 트렁크 안에 있는 가방 하나를 훔쳐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곧 형사에게 붙들린 저는 자수해서 미 장군에게 훔친 가방과 서류를 돌려주며 미안하다는 말만 했고, 먼저 붙들려온 많은 동생이 제 옆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절도를 하지 않으면 이 모든 동생이 굶어 죽는다고 솔직히 얘기했는데, 저를 장군의 숙소 내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해 주셨고, 동생들은 제주도 희망원에서 지낼 수 있는 조치를 해 주셨습니다. 화이트 장군의 외아들이 전투비행 중 전사 후 저는 그분의 양자로 미국에 들어가 공부해 대학교를 입학하고 공산주의를 공부했습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3시간만 자고 공부해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그 뒤에는 매일 시간에 맞춰 전화해 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양어머니의 헌신과 주님의 은혜가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미국군에 입대해 특수 훈련을 했고, 아직도 깨지지 않는 낙하 횟수 기록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용기를 주시고, 능력 주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2. 회개 기도와 기적의 탈출
그 후 주일 대사관 무관부에 발령받았는데, 미국에 있을 때는 양부모님을 따라 늘 가던 교회였지만 월남 전쟁의 위협에서는 한 발 빗겨져 있는 일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예배를 드리고 놀러 다니며 타락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일본 여학생의 충고가 제 마음을 울렸고, 오늘 하루 옳게 살았는지 자신을 늘 돌아보라는 양어머니의 충고가 생각나 주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21권 노트에 빼곡히 적힌 제 죄의 기록을 태우며 주님께 용서를 구한 후 월남전에 지원했습니다. 제가 전쟁에 임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투하겠다고 기도했는데, 제가 맡은 임무는 특전 부대 대위로 한국의 건설회사에서 병원을 짓는 장소를 한국군과 공조하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의 공격으로 부상자가 속출한 곳에 헬기로 부대로 이송했던 때, 저 외의 3명의 군인과 함께 육로를 이용했습니다. 그 길로 적군의 공격을 받았고 맨 후방에서 방어하다 저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이사야 43장 말씀이 저를 붙들었고, 열악한 포로 환경에서 오늘의 양식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개구리나 뱀을 지나가게 해 주셨습니다.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적의 감독자들은 심심하면 포로를 상대로 권총 살인 게임장으로 포로들을 데려와 생존 확률이 1/6밖에 안 되고 살게 되면 판돈을 잃은 적군이 무자비하게 때렸습니다. 그것을 한 번 경험한 저는 밤하늘 총총히 떠오른 별을 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달 동안 마음 속으로 제일 위협적인 적을 공격 후 3명이 권총을 꺼내기 전에 상대방을 4초 만에 격파하고 강을 향해 뛰는 탈출 계획을 연습했습니다. 제가 뛰어든 메콩강은 물뱀과 악어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었기에 하나님께 계속 간절히 기도하며 갔더니 동물들의 공격을 당하지 않게 도우셨습니다. 저는 정글 속으로 숨어 남쪽으로 계속 걷던 어느 날 미군 헬리콥터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왔을 때 저는 강가의 백사장으로 뛰어나가 펄쩍펄쩍 뛰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베트콩의 검은 옷을 걸친 저를 적인 줄 알고 기관총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그 총탄을 피해 밀림 속에 또 다시 숨었다가 그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온 순간 하나님께 제 영혼을 맡긴다고 부르짖으며 다시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순간 미군 헬기 조종사는 항복 의사가 있다고 판단해 구출하려고 백사장에 비상 착륙을 감행했고, 저는 곧 공군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때 적진에서 3명의 동료를 살리고 희생한 공로로 인해 은성 무공 훈장을 받았고, 제가 겪었던 수용소 생활과 특히 러시안룰렛 즉, 권총 살인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는 디어헌터 (The Deer Hunter)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3.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
저는 동료들을 구해오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혀서 두 번째 월남전에 가게 되었고, 총 282회 포로수용소를 공격해 포로 구출 작전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존슨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백악관에 갔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저를 위해 양어머니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하나님의 이 아들을 써달라는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후 대통령 안보 비서관 임명을 받고 전 미 국무장관 키신저와 함께 외교활동을 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외교가 단절된 상태였을 때인데, 더욱이 문화혁명으로 중국은 외국의 어떤 문화도 침투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직 탁구 경기만이 중국 정부의 거부반응이 없었기에 올림픽 평가 위원회 감독 신분으로 중국 팀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친선 경기를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탁구선수단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로 순방하면서 탁구를 통한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서서히 진행했습니다. 제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중국 총리 주은래를 만나 키신저 박사의 편지를 전달했고, 1972년 미국과 중국의 정상 회담을 약속을 받고 냉전 종식의 시작으로 세계 판도를 바꿨습니다. 저는 양어머니의 기도와 조언을 받아서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외교 정책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이 모든 일이 성사되어 갔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내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한 그분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