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알리심]
사도행전17:23-34
아덴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알고자,알지도 못하는 신에게까지 제사를 드리며 끊임없이 추구하고 목말라 했던 것이 바로앎이었습니다.그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웠고 또한 정답을 알아도 두려워했습니다.알지 못하는 두려움은 결국 종교심이 되어,역설적으로 이 세계의 지성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돌과 신상을 세워 숭배하였습니다.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전쟁터 같은 아레오바고로 끌려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외치며 성령의 알리심을 선포합니다.오늘은 바울이 선포한성령의 알리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바른 앎을 알게 하십니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추구했는데,문제는 죄로 부패했기에 이런 기쁨조차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려 갑니다.왜냐하면 사람은 자극적인 죄악을 발견하는데 더 빠르고 능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도 늘 아덴 사람처럼 이기고 이기려고 하며,이 땅에서 삶의 의미와 존재의 목적,죽음 너머의 시(時)를 너무 알고 싶어 합니다.하지만 내일 일을 알지 못해 두렵고,또 알아도 두려우니 뭔가 믿을만한 우상을 세워놓습니다.나의 노후를 보장해줄 것 같은 돈ㆍ자식ㆍ학벌ㆍ외모 등 우상들을 세워놓고 그 우상들에 통치를 받습니다.결국 아덴 사람들은 바른 앎이 없기 때문에,나무와 돌에 신상을 세워 우상을 만들고,그것에 의지하고 숭배하며 절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그들이 이렇게 죄로 물들어 있기에,사도바울의 위대한 아레오바고 설교가 선포됩니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말입니다.이것은 뭔가 지식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너희를 옭아매는'앎'에서 벗어나게 하는'앎',두려움에서 평안을 주는'바른 앎'을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둘째,삼위의 하나님의 사역으로 알리십니다.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아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교합니다.본문24절에'만물을 지으신 천지의 주재이신 성부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은 너무 커서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하나님은 감추어져 있기에 우리 욕심대로 부릴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본문26절에 세네칼이 표현한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등을 인용하여 이 땅의 여인의 자궁 속에 점 하나로 낮아져 성자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음을 설명합니다.죄인의 특징이 경계를 허물고 싶어 하는 것인데,아레오바고 같은 지옥 같은 삶에서 거주의 경계ㆍ혈통의 경계를 잘 지키고 감당할 때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십니다.본문25절은'신이 인간들을 섬기려 하기 때문에,신은 섬기는 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여 성령 하나님이 생령으로 호흡과 생명을 주시고 효과적으로 도우셔서 삼위 하나님을 알리신다고 설명합니다.그 감추어진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는데도 인생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기다림이 필수이고,고난 없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바울은 무신론자인 에피쿠로스학파보다 신의 존재를 인정했던 스토아학파의 논리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소개합니다.바울은 영혼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에 상대의 눈높이에서 낮아짐과 자기부인으로 복음을 전합니다.그러므로 그들의 삶 속에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알리는 것이 성령의 알리심입니다.
셋째,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것입니다.
본문28절도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헬라 시인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신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요.'라는 시구를 인용하여네가 그렇게 경계를 지키고 혈통의 한계를 잘 지키고 있으면 바로 네가 하나님의 소생,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합니다.하나님은 너희가 알아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모르더라도 그를 힘입어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그들의 언어로 알려줍니다.아덴 사람들은 지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두려움과 원망,슬픔 속에서 살아갑니다.인생의 전쟁에서 나의 한계를 경험할 때 우리는 내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하지만 아덴 사람들은 자기 한계상황을 깨닫지 못하니 복음이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넷째,회개한 바울의 삶 자체가 성령의 알리심입니다.
오직 회개만이 성령의 알리심이 됩니다.바울은 본문30절에서 자신이 과거'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다'고 했는데,이것은 바울이 알지 못해 행했던 것들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나도 핍박자였다.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는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내가 바로 그 증인이다.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만,알고 나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큰 진노가 임하니까,너희들 그렇게 안 믿다가는 지옥 가는 줄 알아!'라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회개한 바울의 삶 자체가 성령의 알리심입니다.부활을 안 믿는 그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니,그렇게 돌에 신상을 조각해놓고 섬기고 미신을 숭배하면서도,도리어 바울을 미신같이 보며 조롱합니다.우리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한테 조롱 받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또 다른 한편에서는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고 하는데,이것은 믿기를 거부한다는 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입니다.정답이라는 걸 알게 되어 도리어 두려움이 임하니 복음이 옳다고 생각되어도 미꾸라지처럼 거부하면서 빠져나갑니다.그러니 바울은 그들이 더 이상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더 듣겠다고 하는 그들을 마다하고 떠납니다.그럼에도 세상 정신과 한바탕 영적 전쟁을 치르고 아레오바고를 떠나는 바울에게 몇 사람이 가까이 합니다.바울이 증언한 믿을만한 증거,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한 사람들입니다.교회는 회개한 사람들의 삶이 가장 강력한 성령의 알리심의 메시지입니다.어제 큐티 본문 역대하29장에 악한 남편 아하스 밑에서 히스기야를 신앙으로 키운 믿음의 아내 스가랴의 딸 아비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그날 고등부 아이가 수원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데,엄마가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고백하면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우리들 교회 온지 일 년도 안 되신 엄마인데 날마다 말씀 붙잡고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시며, 5년 동안 남편 얼굴을 보지도 못했지만 진흙탕 이혼소송 중 말씀이 들려서 이혼소송을 철회하는 적용을 하셨답니다.이렇게 오자마자 회개가 되는 분도 있습니다.회개하며 적용하고 공동체에딱풀이 되어 잘 붙어 가시니까 이분의 회개가 성령의 알리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성령님이 알려주시는바른 앎으로 영적경계를 잘 지키고 내가 하나님의 소생임을 알아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