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격분]
사도행전17:16-23
성령의 신사인 바울이 아덴에서 격분했다고 합니다.바울의 격분이 어떤 것인지 오늘은성령의 격분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영혼을 향한 애타는 관심입니다.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의 안내로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베뢰아에 잠깐 남겨둔 실라와 디모데에게 빨리 아덴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들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막상 아덴에 도착해보니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하는 실라와 디모데에게 이곳을 어떻게 양육하는지 보여줌으로 온전한 사역자로 양육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바울은 동역자를 도구가 아닌 귀한 한 영혼으로 보았습니다.한 영혼을 살리는 것이 최고의 목적임을 알기 때문에 그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애타는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분별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그들을 기다리는 동안,바울은 아덴을 조사하며 사역을 준비했을 것입니다.아덴 즉 아테네는 철학과 예술의 고향으로 고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예술가,학자들이 여기서 활동했고,민주주의도 여기서 시작됐으며,신화와 문학은 번영을 이루었습니다.그래서 아덴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그런데 바울이 보니,일류 품격이라는 자부심의 열매는 온 도시에 가득한 우상이었습니다.그래서 바울이 마음에 격분했습니다.죄악으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향해 너무도 애통한 마음으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바울은 격분했습니다.주말에는 회당에서,주중에는 매일 장터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강론했습니다.그러나 교양있는 아덴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성령의 격분은 제자들은 사랑으로 기다리고,아덴의 영혼들은 애타는 관심으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세상의 정신 앞에 격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니 그 시대의 세상 정신,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이 바울을 맞이합니다.바울이예수와 부활을 전하니 경쟁 관계인 그 둘이 한패가 되어 바울과 쟁론합니다.예나 지금이나 사상과 종교의 목적은 모두 행복입니다.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 역시 행복이 목적이지만 행복으로 가는 길이 다릅니다.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학파는 죽으면 아무것도 없고,고통은 싫으니 살아있을 때 행복해지자고 가르칩니다.이에 비해 스토아학파는 이성주의자들인데 금욕주의,경건주의라고도 합니다.이 사상이 발전하여 육을 부정하는 영지주의가 되고,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한 자살은 정당하다고 가르쳤습니다.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삶은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이성적 사고로 군계일학을 추구하는 스토아학파의 조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렇듯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본적인 노력으로 살아갑니다.그러나 바울은 이성과 쾌락이 아닌 복음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 나아가서 이 시대 정신 앞에 격분합니다.이 시대 정신 앞에 격분하고,신앙을 정립해서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성령의 격분입니다.성령의 격분을 하는 바울에게 그들이말쟁이(18절)라고 합니다. 말쟁이는 단편적인 지식을 주워다가 그럴듯한 말로 만들어대는 거리의 철학자들을 폄하한 표현입니다.수치와 조롱을 당해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 어떤 지식보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빌3:8)임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교양 있는 아덴 사람들은'그 뜻을 알고 싶다'라고 하며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끌고 갑니다. 아레오는 전쟁, 바고는 언덕이라는 말로,이곳은 종교와 문화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최고의 법정입니다.바울은 전쟁의 언덕으로 이 시대의 정신 앞에 붙들려 갔습니다.지금까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조롱하는 이 시대 정신의 전쟁터로 우리도 붙들려 가야 합니다.이 땅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전쟁을 통해서만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단단한 가치관이 깨집니다.한 손에는 성경,한 손에는 신문을 보면서 우리는 거대하고 강력한 시대정신 앞에 격분하며 싸워야 합니다.그렇게 싸우다 보면 내가 싸울 상대가 배우자,자녀,돈이 아닌 바로 나,나의 자아,나의 옳음,내 생각임을 깨닫게 됩니다.날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상고하면서 내 죄를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야만 부활의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바울이 아덴 사람들을 연구하다 보니 그들이 오직 새것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 보였습니다.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은 아덴 학자들은 어제 들은 철학을 식상해하며 새것에만 가치를 두었습니다.주님은 이 세상의 특징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습니다.이 시대 정신의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는 방법이 다를 뿐,이 세상 악을 합리화시켜주는 멸망과 죽음의 길입니다.그러나 바울의 새로운 가르침은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이라고 합니다.악하고 음란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가르침입니다.
셋째,범사에 종교심이 많음을 보고 격분해야 합니다.
여기서종교심(22절)은 미신을 말하며,귀신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가장 새로운 것만 찾는 지적 호기심 안에는 사실 귀신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숨어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이미 수많은 신을 섬기면서도 새로운 신이 등장할 때마다 신상과 제단을 만들어 섬깁니다.그것도 모자라 빠트린 신이 있을까 두려워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까지 만들어 두었습니다.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합니다.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 지식은 마음을 높아지게 합니다.높아지니 떨어질까 봐 두렵고,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합니다.이 마음이 바로 교만입니다.대단한 아덴 사람들의 지성 안에 감추어진 이 두려움을 바울은 정확하게 간파했습니다.범사의 종교심을 가지고 구원받지 못할 그들을 보며 애통했고,사랑으로 격분했습니다.바울의 가르침은 성도는 고난받는 일을 위하여 세움 받는 자들이라고 합니다.그리고 일관되게장차 받을 환난에 대해 가르쳤습니다.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는 우리는 말씀으로 해석을 받으니 평안한 것입니다.
성령의 격분은 한 영혼을 향한 애타는 관심입니다.아덴의 선교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하나님의 시야에 있습니다.그래서 이 시대 정신과 두려움으로 인한 기복신앙에 격분해야 합니다.무시와 조롱을 잘 받으며 복음으로 성령의 격분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