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놓임]
행16:35-40
오늘은 성령의 열림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성령의 열림은 이제 사명을 위해 성령의 놓임을 받는데,성령의 놓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1.시기마다날이 새매가 있습니다.
날이 새매는 단순히 날이 밝았다는 뜻이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라는 뜻입니다.지난밤에 바울과 실라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고 가두었는데 그 감옥이 진원지가 되어 온 도시가 흔들리니 상관들이 이제 그들을 풀어주려고 합니다. 날이 새매가 인생의 시기마다 계속 올 수도 있고,분량대로 날이 새는 것 같습니다.이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인데 예수도 못 만나고 날이 새는 것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놓치는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빌립보 간수처럼 저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우고 매로 치기도 했습니다.저는4대째 믿음이 내려온 신앙인이었지만,부자 시집에 들어가서 집안일로 늘 야단맞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제 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친정어머니는 스스로 갇힌 자가 되어 낮은 자리에서 교회 궂은일을 하시며 몸소 섬기는 삶을 스스로 사셨는데,결혼 후 시어머니에게 강제로 갇힘을 당하다 착한 척하는 죄,속으로 엄마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교만한 죄가 하나씩 보였습니다.날이 새매 죄에서 놓임을 받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인데,이는 정죄와는 다릅니다.성령의 효과적인 도움이 없이는 때마다 이렇게 호패가 될 평생 지고 갈 죄패가 보이지 않습니다.내 죄패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시키기 위한 평생의 호패인데,이 죄패를 붙이는 방법은 바로 목장에서 늘 나누며 가는 것입니다.남편은 간수처럼 성실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바울의 찬양을 간수가 옆에서 들은 것처럼 결혼 생활에서 기도하며 이혼 안 하고 그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갇힌 자로 사는 제 찬양을 들었습니다.간수에게 갑자기 죽을 일이 생긴 것처럼 하루 만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수혈하면서 목사님 안 오시냐고 한 것은 어찌하면 구원받느냐 물어본 것이고,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의 복음을 듣고 산부인과 원장인 본인의 낙태죄를 고백하고 그 모든 사람 앞에서 죄패를 딱 붙이고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2.특권 의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를 통해 믿게 될 빌립보 시민들을 위해 날이 새기 전에 다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인데,살아난 간수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쓰면서 믿음으로 평안히 가라 합니다.그런데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때리고 가둔 것을 지적하며 안 나간다고 합니다.발레리안 법에 따르면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재판을 받을 권리,유죄로 판결되더라도 체면을 손상당하지 않을 권리,잔인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고문이나 채찍질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따라서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으로 다루었던 그들이 이제 거꾸로 중죄인이 되었습니다.바울이 그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자기 동족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잔멸했기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늘 유대인 회당을 먼저 찾고 전도했는데,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로마시민권을 주장하면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유대인들이 큰 배신감을 느낄 상황이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 할 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특권을 내려놓고 모진 매를 다 맞았습니다.이렇게 한 영혼을 위해 값을 치른 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 되었다고 했습니다.죄도 없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고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니까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바울은 대가를 치른 후에는 자신의 특권을 언급하며 오직 지역감정과 민족 감정으로 매질을 하고 깊은 옥에 넣고 한 인격을 말살하는 그들의 불법을 드러냈습니다.여기에는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데,바울이 로마 시민을 밝히지 않고 떠났다면 탈옥수가 될 수 있으니 원칙을 지키면서 앞으로의 전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바울을 통해 믿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 사람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남겨놓습니다.감추는 것도,드러내는 것도 오직 한 생명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수치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예수님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듣기만 해도 비아냥거리고 수치스러운 죄패를 다셨습니다.구원을 위해 나의 어떤 기득권도 내려놓을 수 있는 겁니다.바울같이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갇힌 자 되는 적용을 하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3.끝까지 말씀을 가르칩니다.
상관들이 바울을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는데,시장들은 높은 지위를 가졌기에 잃을 것이 있을까 두려워 바울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구원을 위해 적용하며 특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높이십니다.성령의 놓임은 환경의 놓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말씀에 묶인 것이 진정한 놓임입니다.예수와 함께 죽고 살아난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집착,주변의 시선에서 성령의 놓임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믿음의 반대는 무서운 열심이라고 했습니다.사도 바울도 그 무서운 열심으로 스데반을 죽인 것입니다.바울은 마지막으로 루디아의 집에 들러 형제들을 돌아보는데,이들은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구성원이었으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형제로 만나 이렇게 빌립보 교회가 시작됩니다.연약하고 미약한 이들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는 복음의 칼끝이 되어 마지막까지 바울과 동행합니다.여기위로하다라는 말은권면하다라는 뜻인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이 땅에서 돈,질병,남편,자녀에게 묶여 있는 우리가 놓임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파라칼레오에서파라클레이토스라는 단어가 유래하는 것으로진리의 성령,즉말씀의 성령입니다.바울은 여전한 방식으로 이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겪고도 일관되게 위로하고,복음을 전하고,말씀을 가르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합니다.내가 지금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는 이 단순한 일들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 최고의 비결입니다.참된 성령의 놓임은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 게 아니라 내 옆의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여전한 방식으로 묶여 있을 때 이 땅의 위정자와 공중권세자들이 내 옆에 와서 제발 놓아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