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찬송]
행16:16-25
바울이 성령의 거절을 맛보고 사명의 돛을 달고 성령의 직행을 하고 순풍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기뻐서 찬송이 저절로 나왔을까요?바울 사도가 찬송했다는 이야기가 오늘 처음 나옵니다.그래서 얼마나 기쁘면 이렇게 찬송을 할까,바울이 어떤 때 찬송을 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행16:16-18).
무리가 루디아 가정에 며칠 유했습니다.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에 귀신 들린 여종을 우연히 만났습니다.이 여종은 단순히 귀신이 들려 힘들어하는 여종이 아니었습니다.그 여종의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는데 귀신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점을 쳐 미래를 예언하는 자였고 이런 능력으로 주인들은 많은 소득을 벌었습니다.그러나 여종은 주인들에게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재산적 가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종속된 재산이었고 소유였으며 그저 돈 버는 기계,소득의 원천이었습니다.이 여종은 주인들이 모든 것을 다 가로채어갔습니다.그런데 이 여종이 기도하러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일행을 보았습니다.수많은 미래를 점치며 사람의 심령을 꿰뚫어 보며 예언을 했기 때문에 바울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이 여인은 바울 일행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사도 바울은 그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그러나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지나쳤습니다.왜냐하면 자신들은 사명이 있고 앞으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 감옥에 갇힐 게 뻔하기 때문에 수일을 유했습니다.로마는 재산과 소유에 대해 엄격한데 그 여종은 재산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여종의 주인이 한둘이 아니고 여럿이었습니다.그리고 빌립보 성의 유력한 자들이었습니다.그런데 여종이 계속 여러 날을 따라다니면서 이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외치는 겁니다.그러니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습니다.이 여종을 고쳐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여러 날 묵상을 하면서 한 영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목숨을 내버리고.예수님 전하려고 이 길을 가야 하니,한 사람 그것도 귀신 들린 사람,그것도 여자,그것도 종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죽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예수님이 땅에 오신,성육신과 같은 원리입니다.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가 여기서 끝나도 좋다,한 여종을 위하여 자신이 갇힐 것을 각오하고 외쳤습니다.
둘째,대신 값을 치르게 하실 때 하는 것입니다(행16:19-24).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외치니 귀신이 나왔지만,생각한 것처럼 옥에 갇혔습니다.여종의 주인들은 빌립보 성의 유력한 자들이었고 돈이 많았기 때문에,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들에게 즉시 끌고 갔습니다.주인들은 자신들의 여종이 귀신이 나가서 건강해지고 온전해지고,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그러니 아주 교묘하게 고발했습니다.그들을유대인(20절)이라고 죄목을 갖다 붙였습니다.바울과 실라만 유대인입니다.이들 가운데도 이간질하고 인종적 편견으로 자극했습니다.추가로,이들을 고소한 내용은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20절)는 것입니다.이것은폭동을 선동하다, 흔들어 놓는다인데 수많은 나라를 다스리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폭동이었습니다.즉 바울 일행을 로마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선동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로 고발을 당했습니다.결국 온 무리가 선동되어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바울 일행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이들을 즉시 매로 치게 됩니다.너희가 왜 잡혀 왔냐 묻는다면 대답이라도 할 텐데 죄목이 유대인입니다.바울과 실라는 대답할 경황도 변명할 틈도,순식간에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매질로 인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셀 수도 없이 많이 친 후 깊은 옥에 가두었습니다. 1층은 경범죄를 가두었다면 지하의 감옥에는 중범죄자들,사형을 앞둔 자들을 가두는 곳입니다.그것도 그냥 가두는 게 아니라 차꼬를 채워서,기댈 수도 없는 상태로 깊은 옥에 떨어졌습니다.한 사람을 살려주려면 우리는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바울은 끊임없이 거절당하고,순풍을 만나 여기까지 왔는데 사방을 돌아보니 햇빛도 비치지 않는 깊은 옥에 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옆에 실라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견딜 수 없는 고난을 겪어도 함께 아파하는 지체가 있었습니다.이것이 오늘 바울의 찬양입니다.
셋째,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을 하게 됩니다(행16:25).
성령의 찬송은 교회가 듣도록,성도가 듣도록.그러므로 바울과 실라가 부르는 찬송은 깊은 옥임에도 부르는 찬송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이었습니다.결정적으로 이것을 죄수들이 들었습니다.낮아진 그들,살 소망까지 끊어진 자들이 들었습니다.그냥 듣는 게 아니라 귀를 쫑긋 세우고 뜻밖에 너무도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서 너무 놀라서 집중해서 기뻐서 듣는 것을 뜻합니다.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다 들었습니다.여기 가장 밑바닥인 죄수들,사회적으로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죄수들도 있지만 빌립보나 로마의 가장 핵심 그룹들이 전부 몰려 있는 감옥이었습니다.여기에는 수많은 정치인도 수많은 관료도 있었습니다.이들은 바울이 찬송을 하니,바울의 복음을 들었습니다.이것이 성령의 직행입니다.자기 죄를 알고 그 죄를 직면한 자들은 어떤 감옥도 가두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왜냐하면,그 죄로 인해 돌아가신 예수를 만나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보기에는 바울은 또 거절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모두에게 받는 이 거절은 매를 맞아도 찬송을 함으로 직행이 되게 하십니다.바울이 지금 사모디라게,네압볼리,다 지나쳐서 왔는데,게다가 과부 전도하고 귀신 들린 여종 하나 때문에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서 매까지 맞았는데 바울이 처음으로 찬송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어떤 고난 가운데 있어도 우리가 찬송할 수 있습니다.내 노래와 기도를,내 옆의 죄인들이,내 가족들이 자녀가 다 듣습니다.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아도 함께 옥에 갇혀 있는 그들이 다 듣습니다.구속사의 노래가 내 인생의 한밤중에 이렇게 울려 퍼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한 주 보내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