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환상]
사도행전 16:6-10
성령의 동역자 원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창조부터 시작해서 우리 각 사람의 구속까지 늘 함께 일하시는 동역자로 구속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바울이 다음 전도 여정을 고민했을 때 환상으로 인도함을 받는데, 오늘은 성령의 환상에 대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인 거절로 인도하십니다.
갈라디아 남부 심방을 마친 바울 일행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회당도 있는 아시아의 최대 도시인 에베소에 가서 전도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바울이 알 수 있는 분명한 방법으로 아시아의 전도사역을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막 바울을 따라나선 어린 혼혈아 디모데와 선교 초보인 실라에게는 에베소에서 선교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영혼구원을 위해 강력하게 성령이 막으신 뜻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를 위해 에베소 행을 포기한 이유를 성경에 기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디모데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일꾼들이 준비된 3차 전도 여행에서는 에베소에 가서 2년간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바울이 깨달을 수 있는 분명한 방법으로 거절하시면서 아시아 전도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낮아지신 십자가의 성자 예수님의 영으로 거절을 하십니다.
그러자 바울 일행은 말씀에 순종하여 계속 북쪽의 비두니아 중심부로 가고자 애씁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번에도 바울의 계획을 거절하십니다.
특별히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왜 예수의 영이라고 하셨을까요? 전도계획을 두 번이나 거절당하면서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했고, 예수님이 죄인 중 괴수인 바울 자신에게 거절을 당하실 정도로 낮추신 것은 지금 자기가 당하는 거절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려갔다는 것은 해안 지대인 드로아로 가는 것을 표현한 것도 있지만 영적인 의미로 내려갔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주신 사명대로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라 드로아로 내려가는 적용입니다.
예수님 따라 바울이 낮아진 이유와 구체적인 적용이 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시아와 비두니아라는 지명은 베드로전서 1:1에서 딱 한번 함께 언급됩니다. 베드로가 이 지역에서 전도했다는 성경 기록은 없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때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주님께 돌아온 후 흩어진 사람들이 이곳에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이곳 넓은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은 수석 사도 베드로의 권위를 직간접적으로 다 인정하고 잘 알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5:19-21에서 전도에 관한 중요한 원칙을 말했는데, 바로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상존한던 당시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사도 베드로가 그곳 사역을 더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성령의 깨달음이 왔기 때문일 것 입니다.그렇지만 3차 전도여행 때는 바울이 그곳에 가서 가르친 것으로 보면, 베드로와 긴장 관계도 해소되었고, 선교에서 내터 네터라는 진부한 개념도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가지 않은 것은 순종인 동시에 아주 낮아지는 적용입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주님이 정하신 경계를 지키면서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지켜주면서 전체 교회를 세웠습니다.
셋째.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바울 일행은 갖은 고난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힘든 적용으로 드로아에 도착해보니, 사방이 막힌 바다만 있을 뿐 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그 밤에 이 음성이 들리기에 그 밤은 축복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두려운 이 상황에 창세기 15: 1에서 아브라함이 두려운 중에 환상으로, 창세기 46: 2에도 야곱에게 이상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또 오늘 바울에게 같은 단어인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방이 막힌 드로아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막으신 땅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바다가 활짝 열린 땅이었던 것이고, 바다라는 장애를 넘어 생각 못 했던 서쪽 유럽으로 보내시는 부르심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여러 문화권을 이해할 수 있고 언어가 가능한 디모데와 실라를 이미 붙어주신 상황에서 성령과 예수의 영이 막아도 바울이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내 눈에 보이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한 사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성령이 막으시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감추어진 경륜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후에 그 한 사람이 우리를 도우라 했습니다. 본문10절에 우리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 우리 중 사도행전의 글을 쓰고 있는 누가는 의사이며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로 드로아에서 선교 팀에 합류해 끝까지 바울의 수행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헬라의 학문과 문화에 능통해 그 중심부로 들어가야 하는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총출동하셔서 바울의 선교를 환상으로 분명하게 인도하셨고, 삼위일체의 우리를 닮은 주님의 말씀을 함께 해석하고 적용할 믿음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와 누가 이 네 사람은 이제 믿음으로 우리가 되어 환상에 대해 의논했고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여기서 인정했다는 뜻은 단서들을 모아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말씀으로 해석이 된 것이고 격렬한 논쟁 끝에 드디어 내가 설득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주신 말씀대로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씁니다. 공동체와 더불어 말씀을 듣고 삶이 해석되니 즉시 적용하는데 이는 성령의 환상을 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우리 공동체가 한 사람의 구원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사랑, 주식, 성공 같은 세상의 모든 환상을 버리고, 모든 나의 인생에 삼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한 사람의 구원을 돕는 성령의 환상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