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의논]
행 15:5-11
화성연쇄 살인범 진범이 잡혀서 억울하게 이십여 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가 무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다들 의논했지만, 빌라도 법정에서 일방적으로 사형으로 몰려서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의논이 지금도 행해집니다. 우리는 그 기가 막힌 사건이 천하보다 귀한 구원이 되도록 성령의 의논을 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본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차별받았던 베니게와 사마리아의 교회들은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바울의 선교 보고에 찬 물을 끼얹었습니다. 이 유대인들도 바리새파 중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믿는 사람들입니다. 선교사들이 보고하는 놀라운 사역과 바리새파 신자들의 그럴듯한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의논에도 죽이는 의논이 있고, 살라는 의논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여서 의논할 수도 있고 사도들과 장로들처럼 성도를 살리는 의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의논이 성령의 의논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구원의 공동체에서 늘 의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자신들을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인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물었습니다. 자기들이 결정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여서 많은 변론을 했습니다. 변론은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진짜를 찾기 위해 상대와 진지하게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을 말합니다. 승리를 목적으로 싸우면 사람을 살릴 수 없지만, 성령의 의논은 진리가 목적이므로 그 진리가 결국 사람을 살립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걸리니 인내해야 합니다. 듣는 마음을 가졌기에 많은 변론을 거쳐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형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변론이 끝난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자기 말을 합니다. 성령으로 일어나 처음 한 말이 형제들아입니다. 바리새인들도 바울도 모두 주님이 피 값을 치르시고 죽어주신 형제입니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말은 너희도 알거니와입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이방인에게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입니다. 베드로를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보내신 일은 예루살렘 교회의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일어난 모든 일을 차례대로 자세히 설명해서 성령의 설득으로 이해를 시켰습니다. 고넬로의 집 한 가정이 성도가 된 것으로도 이렇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인데 훨씬 많은 이방인이 예수 믿고 교회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율법과 할례를 주장했을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고 과거 고넬료 사건 때 이미 받아들인 이방인의 구원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내가 당한 게 얼마나 능력인지 모릅니다. 의논할 때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아무리 의논해도 살리는 답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도 당신과 같았다. 그렇게 간증하며 주 안에서 한 형제의식을 가질 때 성령의 의논이 되어서 구원으로 인도됩니다.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될 수 있고 어떤 범죄자도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살려주신 형제입니다. 이번 주일에도 정인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습니다. 정인이 엄마를 생각할 때 너무 많이 아픈 것 같습니다. 아픈 부모, 자녀가 우리들교회에도 많습니다. 문제가 많아도 그 문제보다 하나 더 기쁜 것이 있어서 나누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별 인생이 없습니다. 이것을 공동체에서 의논하기 때문에 이것이 살리는 의논이 됩니다. 이런 것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내 이야기, 내 딸 이야기, 내 엄마 이야기로 늘 받아들여서 아파하고 기도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회개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베드로도 여기서 증인을 제시하는데 그 증인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오순절 성령강림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례 파든 바리새파든 율법주의자든 절대 반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성령의 증거로 하나님이 증언하신 일입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마음을 아십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보시기에 믿음 있는 척하는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베드로는 인간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압니다. 그들은 자기 안에 답이 있을 수 없음을 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답이심을 고백합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할례를 받아도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열심과 그 모든 것을 다 믿음이라고 착각합니다. 큐티도 구원도 좋지만 남을 죽이는 열심히 아니라 살리는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보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멍에만 지우려는 거짓 종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좁은 길을 가며 돌에 맞는 바울이지만 그것보다 하나 더 좋은 게 있어서 그 길을 갑니다. 누구나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습니다. 전적 무능, 전적 부패한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절대 믿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여러 고난을 통하여 처절한 회개로 돌이켜야 하나님만이 답이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모든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답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환경입니다. 여러분들의 아픔과 가난과 질병을 주님이 아십니다. 거기에서 하나 더 기쁜 기쁨. 그 병의 나음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 믿는다고 이런 신앙고백이 되셔야 하는데 목장에서 성령의 의논을 올해 내내 또 하셔야 합니다. 혼자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낙태 개정 동의에 불을 지핀 의사 집사님이 자기가 아끼는 의사 친구 후배에게 개정 동의를 부탁했는데 그분의 나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야. 사양할게. 하는 말에 형제의식과 하나님이 답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분이 미국에서 본인이 이혼하고 낙태하고 또 아이가 지금 ADHD이고 이런 이야기를 우리들교회 말씀 듣고 성령의 증인 되어서 간증한 것을 국회의원 모두에게도 보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니 이렇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의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의논은 하나님만 답이시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이 사람을 살리는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