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를 지어 부르라]
겔 19:1~14
정정환 목사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없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애가를 부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애굽 땅에 끌려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1절). 패역한 왕과 유다 지도자들에게 애가를 지어 불러 주라고 하십니다. 애가는 슬픈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의 패망이 임박했기 때문에 이 애가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말로 해도 안 듣고 행동으로 예언해도 안 들으니, 이제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젊은 사자의 비유(2절)로 말씀하십니다. 암사자가 키운 젊은 사자가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서 사람을 삼키다가 잡혀 애굽 땅으로 끌려갑니다. 여기서 암사자는 유다이고 젊은 사자는 여호아하스 왕입니다. 이 젊은 사자의 문제는,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킨다는 것(3절)입니다. 이처럼 여호아하스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 신을 숭배하고 폭정으로 백성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결국 애굽으로 끌려간 것은 자기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젊은 사자는 여호아하스의 아버지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유다의 역대 왕 중 가장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여호아하스는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오히려 죄만 지었습니다. 그러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내가 갈고리에 꿰어서 애굽으로 끌려간 아픔을 겪을 때 그동안 얼마나 나의 완악함으로 사람들을 물어뜯고 삼켜왔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끌려가는 것이 심판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나를 절대 포기치 않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견인해 가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내 스스로는 절대로 낮아질 것 같지 않으니까 애굽이라는 겸손한 환경을 나에게 허락하심으로 나를 낮추시고 비천한 환경을 통해서 나의 주제를 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바벨론의 옥에서 우는 소리를 그쳐야 합니다.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 알고 새끼 하나를 골라서 젊은 사자로 키웁니다(5절).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끌려간 뒤에 그가 돌아오기를 고대했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자신들의 소망이 끊어진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여호야김의 후계자로 그 아들 여호야긴에게 다시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긴이 왕에 올랐지만, 그 또한 조상의 행했던 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을 행합니다. 첫 번째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켰다면 두 번째 젊은 사자는 사람을 삼킬 뿐 아니라, 궁궐을 헐고 성읍을 부수고 우는 소리로 황폐하게 했습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왕이 악을 행하다 애굽으로 끌려간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선왕들의 쇠락을 보고 그것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도 통치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37년간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젊은 사자가 사람을 삼키고 궁궐까지 헐고 성읍을 부수면서 울었다(7절) 고 했습니다. 지독한 자기애와 욕망대로 살고자 울었습니다. 그 우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자신이 있는 곳마저도 황폐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공동체에서 불러주는 애가를 듣습니다. 하지만 들으면서도 자기애에 빠져 우는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나 자신도 황폐하게 합니다. 주님은 애가를 부르라고 하셨는데, 내 설움에 울고 생색이 나서 울고 탐욕에 사로잡혀서 울고 분노에 차서 웁니다. 그 우는 소리로 밤낮 식구들의 궁궐을 헐고 지체들의 성읍을 부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에게 바벨론에 이 사로잡힌 환경을 허락해주시고 그 우는 소리의 실상을 보게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이 바벨론의 옥에 갇혀야 비로소 옥중 광채의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나를 향한 애가로 들려질 때 내 죄가 보이고 비로소 우는 소리를 그치게 됩니다.
셋째, 권세 잡은 자의 규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10절)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를 맺고 가지도 무성케 되었습니다. 그 가지 중에서 하나가 다른 가지보다 키가 유달리 높고 뛰어나 보였습니다(11절). 그 가지는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백성들까지도 하나님의 사신을 비웃고 선지자들을 욕할 정도로 완악했습니다. 결국, 포도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땅에 던져진 것처럼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끌려가 두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 눈도 뽑히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하나도 없게 되고 열매조차도 모두 불에 탈 정도로 유다의 이 왕권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처참한 일들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애가를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시드기야와 유다가 망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언제나 자기가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되려고 합니다. 결국 뿌리가 뽑히고 동풍을 맞아서 메마르고 불에 타는 그런 사건이 찾아와야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14절) 말씀하십니다. 나의 완악함에 애굽 땅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탐욕으로 인해서 바벨론의 옥에 갇히기도 하고 교만함에 모든 가지가 동풍에 마르고 불에 탔을지라도, 애가로 지어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서부터 시작하실 거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이 이 애가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유다국은 멸망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에서 시편 126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지어 불렀던 이 눈물의 애가를 70년이 지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는 기쁨의 찬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부르는 나의 애가가 훗날 내 식구와 내 자녀, 내 곁에 있는 지체들이 부르는 환희의 찬가가 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기쁨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나의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광야에서 내가 부르는 애가를 반드시 구원의 송가로 화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나를 향한 주님의 이 애가를 듣고 나의 애가를 지어 부르는 한 주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