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약속]
최대규 목사
왕하 25:22~30
4번에 걸친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더럽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가 어떤 회복의 약속을 붙잡아야 할까요?
첫째, 남은 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 땅에 남긴 자들이 있었습니다(22절).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나라의 지도자들과 용사와 장인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기 때문에 남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 외에는 없었습니다. 이 비천한 자들을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그달리야는 명문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달리야의 조부 사반은 요시야 왕 때 서기관이었고,그의 부친 아히감은 선지자 이사야와 교류했던 사람입니다. 또 그달리야도 예레미야와 깊은 조우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지금 남유다가 망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해주었고, 그 비천한 자들에게 말씀이 계속 임했습니다. 그 후, 그달리야가 총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23-24절). 실상 남유다에는 비천한 자들만 남아 있던 게 아니라, 바벨론 군사의 눈을 피하여 곳곳에 상류계층들이 숨어있었고 그들이 모두 미스바로 몰려들었습니다. 미스바는 과거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선지자 사무엘이 영적 각성 운동을 전개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미스바에 모인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24절)는 그달리야의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말이 민족의 배신자의 말 같고, 파렴치한 매국노의 말 같이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원수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남은 자에게 말씀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둘째, 해결이 아니라 회개가 먼저입니다.
이스마엘은 왕족 출신이었습니다(25절). 그달리야가 이스마엘을 초청한 식사 자리에서,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쳐서 죽이고라는 단어는 바벨론이 남유다 사람들을 쳐서 죽인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스마엘이 마치 심판자가 되어서 그달리야를 쳐 죽인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암몬의 사주를 받았는데(예레미야 40:14),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통과할 때 끊임없이 훼방해서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유다 백성을 정말 사랑하는 자였다면 암몬의 사주를 받아서 동족을 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살해한 근본적인 동기는 시기와 질투심이었습니다. 그 자리가 꼭두각시 같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은 그 자리가 너무나 탐났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방법대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달리야만 죽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달리야를 죽이니 옆에 있던 갈대아인도 죽여야 했고, 갈대아인만 죽이면 되는 게 아니라 아무 연관이 없는 유대인들까지 죽여야 했습니다. 결국 쉽게 해결하려는 자신의 방식대로 따라간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도망가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진 자가 되었습니다. 분명 이스마엘은 참 악한 자였지만, 죽임당한 그달리야 또한 분별하지 못한 악과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그달리야는 남유다의 미래를 책임질만한 지도자였지만, 이렇게 지도자 한 사람이 분별을 못 해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요하난은 이미 이스마엘의 반역 징후를 감시하고 그달리야에게 미리 경고했습니다(예레미야 40:16).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죽일 것 같으니 미리 치자고 했는데, 자기 확신에 젖어서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무시한 것이 남유다 전체를 도탄에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도 반복하고 반복해서 말씀을 전했지만 듣고 깨닫는 자가 정말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한 명이 없었던 것이 남유다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달리야도, 이스마엘도, 요하난도 다 말씀을 떠난 자들이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해결이 아니라 회개가 먼저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셋째, 종신토록 끊이지 않는 약속을 주십니다(27-30절).
열왕기하의 마지막은 여호야긴 왕이 BC562년에 바벨론 왕에 의하여 감옥에서 풀려나 죄수의 옷을 벗고 왕족으로서 우대를 받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7년 동안 여호야긴은사로 잡혀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가 되어서야 징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야긴은 새로운 바벨론 왕을 통해 옥에서 나왔습니다. 지위가 높아지고 머리를 들게 하셨습니다. 모든 왕보다도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왜 그가 다른 왕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지 객관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우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살길을 찾아 암몬으로 애굽으로 떠난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이 되어 겨우 3개월간 통치를 하다가 바벨론 왕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37년간의 포로 생활 이후에 회복이 됐습니다.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그 질긴 포로 생활을 겪으며 여호야긴은 자신이 여호와께 악을 행한 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잘 걸어가다 보면 그 길 끝에 주님이 계시지 않겠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생각대로 다윗의 후손이자, 여호야긴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여호야긴을 구원의 계보에 당당히 올려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도, 회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끊어지지 않는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성도님이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