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마지막]
왕하20장12-21절
정지훈 목사
지난 주 우리들교회 모든 부서가 열왕기하 20장 본문을 가지고, 히스기야의 눈물이라는 주제로 큐페온을 열었습니다. 청소년부도 HIS TEARS라는 주제로 큐페온을 하여, 많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죽을병에서 살려주시고 15년의 삶을 덤으로 주신 것에서 끝나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더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히스기야의 마지막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되었다 함이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을 통보받았던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나를 기억해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으로 병을 낫게 해주시면서 15년간 수명을 더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때문에 히스기야에게 허락하신 십오 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시간이 되었어야 합니다. 어떤 것도 응답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금세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기도응답을 받은 히스기야 역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덤으로 주신 15년 동안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편지와 예물과 함께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히스기야가 정작 그들에게 살려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랑한 것이었습니다.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던 바벨론과 함께 동맹을 맺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죽을병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만나고 대단한 징조도 확인하고 십팔만 오천 명이나 되는 앗수르 군대를 몰살시키시는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금세 자신을 도와줄 것 같은 바벨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이며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당장 죽을 것 같은 환경 앞에서 통곡하면서 눈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다가도 그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금세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나 환경을 찾아가고 또 그 사람들에게 내 모든 것을 내보이면서 교만하게 인간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둘째, 물어주고 들어주는 공동체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방법을 내세우던 히스기야 앞에 다시 이사야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대답하는 것을 보니까 히스기야는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도 보이지 않은 것이 없다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히스기야처럼 우리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말씀으로 물어주고 들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당장에는 몰라도 공동체 안에 붙어있으면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또 내가 얼마나 분별하지 못하고 악한 선택을 하려고 하는지 깨닫게 해주십니다.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공부도 하게 되고 옆에 신앙이 좋은 친구들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교회를 가게 됩니다. 누구와 함께 있고 어디에 붙어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고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성령의 만남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말씀과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게 되면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어른들은 말씀을 들어도 머리로만 깨닫는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온 몸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말씀이 한 번 들어가면 인생이 바뀝니다. 적용을 너무 잘합니다. 이렇게 복음은 공동체의 섬김과 말씀으로 실제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물어주고 들어주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셋째, 여호와의 선하신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바로 책망과 심판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방법과 계획을 신뢰했던 히스기야의 결론은 그렇게도 신뢰했던 바벨론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110년이 지난 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이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와 후손이었던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다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장담을 하면서 삽니다. 당장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몇 년 후의 삶을 꿈꾸고 계획하면서 삽니다. 코로나로 이렇게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물론 계획하는 것 자체가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착각 속에 살게 됩니다. 이사야가 전하는 심판과 책망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 히스기야가 그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회개를 받아주셔서 그 아들 므낫세가 온갖 악을 행했지만 마지막에는 포로로 잡혀가서 회개한 부분을 성경에 실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이 히스기야는 대단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히스기야의 대단한 업적과 열심에도 결국 남유다를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업적과 부와 명예를 쌓아도 그것이 내 자녀, 내 가정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물려주고 보여주어야 될까요? 바로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믿음의 유산이고 우리의 가정과 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심방을 가서 참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자녀의 말도 안 되는 사건 앞에서 부모님이 자기 죄를 보시면서 눈물로 회개하고 자녀에게 용서를 구할 때 은혜가 됩니다. 어떤 말로도 설득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때려도, 욕을 해도, 용돈을 끊어도 안 되는 그런 힘든 아이들이 많은데 부모님의 눈물과 회개의 기도를 듣고 반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앞에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안 되는 것들을 인정하면서, 또 자녀에게 사과하시고 용서를 구하면서 가시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이 설득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믿음의 유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영적으로 어두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고 갈 때에 우리 연약함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앙고백의 유산이 흘러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