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그리스도인]
행 11:22~26
광복 75주년을 맞았습니다. 정인보 작사의 광복절 노래를 보면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처럼 광복이 찾아왔고,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여기서 나리니의 가사가 예언처럼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제헌국회가 성령의 소수가 되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았으나 기독교 역사가 짧으니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안디옥 교인들처럼 진정한 성령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입니다.
부자 동네에 스펙도 좋은 안디옥에서 무명의 성도가 주 예수를 전파해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들렀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악한 사람, 선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조용한 사람 모두 소문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도는 세상에서 소문나기가 가장 좋은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고전 4:9절에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좋은 구경거리가 우리에게 좋은 소문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의 좋은 소문이 세상에서는 좋은 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서도 진리는 좋은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문은 예수 잘 믿는 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도 행 1:8절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문에 매우 놀랐습니다.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좋은 소문에 걸맞게 믿음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둘째, 믿음과 삶이 일치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가 파송되어 가보니 안디옥교회에도 동일한 은혜가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는 미완료 시제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권고했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는 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그들에게 많은 박해와 시험들이 도래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권했던 것입니다.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확고부동한 마음으로 주를 의지해나가려는 노력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말씀을 나누고 격려하고 권고도 하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굳게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가 이렇게 붙어있으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24절 말씀처럼 그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착함이 사람의 인격이라면, 성령과 믿음의 충만은 영적으로 충만한 은혜와 믿음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바나바는 성품과 인격, 믿음을 다 갖춘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믿음이 삶으로 증명되니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라고 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자기 죄를 보며 부흥한 것을 보면, 착하고 성령과 믿음의 충만하다는 것은 결국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복음 때문에 동역자를 분별합니다.
25절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는데, 여기서 찾는다는 애써 찾는다라는 뜻으로 바나바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나타냅니다. 사울은 1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낮아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왕성하게 성장하는 이방인 교회를 위해 사울이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묻지 않고 홀로 찾아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잔멸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던 사울은쓰임 받는 것만으로도정말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잊힌 것 같은 사울을 성령님이 아시고 찾아오실 때가 있기에 내가 뭘 하려고 하지 않고 뭐든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큰 무리가 주께 더해지는 그 때에 바나바가 더 잘 가르칠 사람을 찾았다는 것은 그가 오직 복음을 위한 유익만을 생각하며, 홀로 목회할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착한 사람입니다. 내가 팽 당할까봐 우리는 훌륭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는데,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일 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치고 자신의 자리를 저절로 사울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양육 받은 안디옥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은 더 이상 유대교의 한 종파에 속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유대교와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신앙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바나바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 동역자를 분별하고, 성령의 그리스도인으로 좋은 소문이 나서 믿음과 삶이 일치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