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설득]
행 10:9~16
온라인 예배 16주째입니다. 요즘 코로나19 위기 가운데도 미스터 트롯이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음악 장르에 대한 편견을 넘어 그들의 스토리가 덧입혀지니 예전의 뽕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감동은 물론 국민들을 설득까지 시킵니다. 오늘은 설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령의 설득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본문에 베드로가 허기져서 기도했다는 뜻은 금식한 의미로 보입니다. 구원을 위한 금식은 영육 간에 유익합니다. 당시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저녁과 아침 정오 시간이 공식적인 기도 시간이었는데, 베드로는 그 시간에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지붕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진정성 있게 기도하는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환상이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람 자체를 부러워하지 말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한 번에 삼천 명 오천 명씩 주님께 돌아오게 할 정도의 설교에 능 하였지만, 그 이전에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묻는 것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말씀이 지시하는 길로 가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순종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6주 동안 온라인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2시간 동안 기도제목을 읽으며 기도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기도는 노동과 같습니다. 그런데 간절하고 힘든 분들은 매일 기도회에 들어오시지만, 겉으로 문제가 없는 분들은 보고 듣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이런 분들이 우리들 교회에 있다는 것 자체로 구원의 상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 라는 진리를 따르기 위해 기도회에 들어가는 것이 베드로처럼 지붕 위에 올라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중보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갈까요? 엄마와 같이 큐티하고 믿음이 자라게 해달라는 초5 학생, 자살 충동으로 약을 모은다는 분, 남편의 외도로 자살을 시도하는 분 등등 이런 기도 제목을 올리는 분들일 것입니다. 영적 습관을 만들기 위해 고난은 필수적 이며, 이렇게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는 사람은 설득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오전 10시와 오후 6시에 식사를 했는데, 정오에 시장했다고 한 것을 보면 아침 금식을 한 것 같습니다. 저도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금식을 해보았고, 신학을 고민할 때 며칠씩 금식기도를 해마다 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인내를 금식을 통해 많은 부분 알게 되고, 결국 인내가 쌓여서 사역까지 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황홀한 중에 초자연적 현상이 갑자기 덮친 것이기도 하지만, 비정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현상을 매우 잘 인지할 수 있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환상 중에 보인 것은 그냥 동물이 아닌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한 보자기가 땅에 내려오는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배가 아무리 고파도 부정한 동물로 여겨 먹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 잔뜩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잡아의 원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먹기 위해 살해하라, 더 나아가서는 보자기에 있는 동물들이 깨끗해서 제사를 드리기에도 합당하다는 의미까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음식 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부정한 자로 여겨 상종 않던 이방인들에 다가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진정한 의미를 도외시하고 그릇된 행동을 하면서 자기는 경건하다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 자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전도자 자신의 편견입니다. 베드로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무두장이 집에서 머무르고, 모두가 무시하는 사마리아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편견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거기까지만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쫓으며 제자 훈련을 받았어도 그들에게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이기적인 선민의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넘어갔어도 안 되는 것이 시기마다 있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도망간 베드로의 죄를 사해주었듯이, 이방인의 죄도 똑같이 깨끗케 하시겠다는 말씀이 복음입니다. 음식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보여 주시며 먹으라 하시지만 계속해서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세 번이나 음식물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시면서 동일한 환상과 음성으로 설득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고넬료보다 베드로를 설득하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행위로는 고넬료가 훌륭해 보이지만 고넬료는 보이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래도 고기잡이 때부터 베드로를 양육해 오셨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시며 설득합니다. 이렇게 수고로이 베드로를 설득한 이유는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는 분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이 있고 우리 자신이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말을 듣느냐 안 듣느냐가 목적이 아니라 베드로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설득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이방으로 들어가는 역사적 방법을 독재가 아닌 설득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십니다.우리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인내하듯 나도 인내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어느 부목자님은 본인 회사가 망하면서 큰 금액을 탕감 받았는데 사오백 만 원 정도를 받지 못해 소송을 진행하다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못 받아서 목을 조른다는 설교를 듣고 즉시 소송을 취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전무 승진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순종으로 적용을 할 수 있는 분이 성령의 설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내하시며 설득하셨듯이 여러분도 남을 위해 끝없이 인내하며 설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설득은 구원을 위한 설득이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설득을 하시면 하나님이 꼭 기억해 주시니 믿고 기도하며 편견을 버리고 잘 인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