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선민의식]
행 9:43~10:8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것을 은혜가 아닌 특권으로 생각하고, 죄 사함이 아닌 돈과 승진을 특권으로 생각하기에 그릇된 선민의식이 생깁니다. 오늘은 성령의 선민의식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기적인 선민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레위기에 보면 무두장이(43절)는 죽은 짐승을 다루며 털과 가죽을 만지기 때문에 불결하고 부정한 직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더럽다고 멸시당했는데, 그런 집에 베드로가 여러 날 유숙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그때까지 유대인의 관습이나 할례 등 율법적인 사고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렀다고 누가가 굳이 기록한 것은, 고넬료의 구원사건과 관련하여 베드로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너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방 세계에 복음의 문이 열리고 둘째, 할례 없이 교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셋째, 교회가 유대교적 습성을 버리고 독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첫 시작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 주의가 가득해서 이방인은 소망이 없고 상종 못 할 인간들이었습니다. 세계 온 족속이 유대인으로부터 복음을 받아야 하는데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싫어하니까 복음을 전파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선민 주의란, 특권을 줬는데도 못 누리고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쓰는 데에서 오는 열등감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게 선민의식입니다.
둘째, 이타적인 선민의식이 필요합니다.
'가이사랴'(1절) 는 해변 도시로 욥바의 북쪽 50킬로미터 정도에 있었습니다. 헤롯이 새롭게 건축한 많은 건물이 있어서 건축의 메카라고 할 정도였고 지금도 그 해변은 정말 멋있습니다. 그곳은 로마 총독의 주둔지였고, 순수 로마사람으로만 구성된 황제 직속 친위대인 이달리야 부대가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을 체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군대였습니다. 이게 100명씩 6개가 있었는데, 그 중 백부장은 그들이 진급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였습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으로 로마에 뿌리가 있는 금수저, 선민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그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는 또한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2절) 를 했습니다. 참으로 이타적인 선민의식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선민의식으로 너무 악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완벽한 고넬료와 같은 모델을 옆에 붙여주셨습니다. 가족에게 충성하고 사회적으로는 군대의 백부장이고 영적으로도 베드로를 잘 모시고 부하도 양육을 잘 시켜서 부하까지 경건(7절) 했습니다. 영 육 간에 완벽하게 모든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에 많은 이방인 중에서도 특별히 고넬료에게 이방인 구원 1호라는 영예와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나라의 선민의식이 투철했습니다. 돈도 많고 지위도 더 올라갈 곳이 없는 높은 자리에서 이렇게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다는 것은, 잠시 후면 돌아갈 영원한 집의 영광과 평안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의 백부장이란 자기 자리를 사용해서 로마를 복음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만날 수도 없는 이런 대단한 선민인 고넬료가 베드로를 찾아오게 하심으로 땅끝이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며명하신 복음전파가 예루살렘과 유대, 그리고 빌립에 의해 유대인이 반쯤 섞인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땅끝으로의 복음전파가 시작되었습니다. 즉, 이방 땅에도 복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의 특권으로 가득 차 선민 같아 보이는 고넬료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로마의 권력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모델이 이 땅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2천 년 이상 영원히 생명책에 기록될 진정한 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 전도를 위해 그릇 자체가 갖춰진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 돼야 합니다.
4절에 천사가 등장했습니다. 천사는 구속사의 중요한 경우에 등장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경건하게 기도하고 사니까, 날마다 기도했던 구 시쯤 되어(3절) 환상 중에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면 이타적으로 중보 기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난의 양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기도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그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상달하여(4절) 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제물을 받으신 것을 뜻합니다.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의 행위가 하나님께 다 열납되고 상달 되었습니다.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진정한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때,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십니다(5절). 다 갖춘 고넬료가 베드로를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너무도 정확하게 만날 사람을 가르쳐주십니다. 절묘한 만남이었습니다. 이런 정확한 만남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정확하게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선민주의가 대단하다는 것을고넬료도아는데, 베드로가 유대인의 관습을 무시하고 무두장이의 집에 머문다는 정보(6절)는 고넬료로 하여금 이방인인 자신의 초청도 베드로가 받아들일 거란 확신을 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두장이 집에 머문 것이 겉으로만의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진짜이고, 자신의 기도와 구제에 대한하나님의 응답이 진실성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기적인 선민의식을 버리고, 구원을 위해 이타적으로 적용하며 나아가는 것이 성령의 선민의식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 되어야 합니다. 택한 백성이 선민인데 이것이 특권 의식이 되면 안 됩니다. 주 안에서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이방인에게 이런 마음으로 나아가는 한 주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