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형제]
행 9:10~19
오늘은 온라인 예배 8주 차입니다. 정오의 빛을 통해 성령의 회심을 한 바울을 누가 환영해 주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요, 기독교인에게는 박해자였기 때문에 회심했으나 이 세상에 환영해줄 자가 없습니다. 이럴 때 같은 마음으로 알아주는 예수 믿는 형제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형제를 묵상해보겠습니다.
1.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알려줍니다.
그 때에 는 언제인가요? 사울이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며 기도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사울이 다른 성도들과 어울리며 성도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나니아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사울에게 안수 준 게 아니고 단지 자기의 자리를 지켰을 뿐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자리가 그들에게 주신 사역지이기도 합니다. 묵묵히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니 목장에 목원 하나 데려오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성령의 형제가 없거나 형제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가 사역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자기 맘대로의 사역지를 찾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2. 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크게 박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아나니아도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울이 겸손히 기도하는 중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적극적인 순종을 하는 아나니아의 형제 사랑을 통해서 회심한 사울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인도하십니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해서 공동체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절대로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의 제목이 혹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줍니다.
형제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시 보게 하는 역할, 즉 양육을 잘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사울은 사흘 동안의 흑암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영의 눈을 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영안이 가려져서 진정으로 볼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령의 회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그들의 마음이 녹아지고 눈을 덮고 있던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서 영의 눈이 떠집니다. 먼저 된 사람들이 나중 된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고 의무입니다.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면 무엇을 정확하게 믿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에 성령의 형제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를 도와야 합니다. 생색날 수밖에 없는 이런 양육을 오랫동안 해야 합니다.
4. 사명을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성도들을 결박한 권한을 받은 자라는 사울의 정체를 아나니아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의 악행이 널리 알려졌단 것을 말합니다. 이런 핍박자 사울에게 가라고 명하시는 것을 아나니아가 어떻게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나니아는 편견이 아니라 사울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갖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에 대한 뜻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그는 온 세상을 위해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다시 보게 되고 영의 눈이 떠져서 사명을 발견하고, 그의 모든 것이 사명을 위해 쓰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울은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위해 많은 핍박과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씀을 보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형제가 적용하는 것을 보고 기적을 보니 또 내가 따라 하게 되고,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공동체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적용으로 서로 적용하는 것이 회심이 유지되는 비결입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의 시력이 회복되자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형제는 이렇게 영육의 강건을 위해 서로 돌보아야 합니다. 같이 밥도 먹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정말 성령의 큰 공동체입니다.
어떤 목자님의 나눔입니다. '저는 초신자 때부터 인정받는 것에 열심이었는데,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아서 고3인 딸이 졸업하면 이혼할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해에 아내가 말기 암으로 일이 년 정도 남았다는 진단을 받고 그동안 버티자며 병간호를 열심히 했습니다. 속으로는 빨리 죽으라고 하면서도 6년을 넘게 간병하며, 훌륭한 남편이라고 별을 달고 훈장을 달고 살았습니다. 아내와 사별 후 불신 재혼을 했고 교회를 떠났다가, 삼 년 전 탄천을 걷는 중 전처를 박해했던 것이 깨달아지고 내가 아내를 죽였단 생각이 들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영적 소경임을 자각한 사건이었고, 교보문고에서 목사님의 나를 살리는 회개란 책을 만난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은 정오의 빛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공동체와 내 죄를 보며 붙어가고 있고, 아내를 간병하면서 했던 선교의 서원을 이제 큐티엠에서 문서 방송 사역으로 갚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분이 사도바울처럼 얼마나 일을 크게 감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큐티를 통해 오늘 말씀으로 내 사건을 해석하고, 내일 말씀으로 또 해석하기 때문에 우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고 능력이 어마어마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