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큰 기쁨]
사도행전8:4-8
성령의 흩어짐이라면 어디를 가든 큰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큰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복음을 전하는 기쁨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4절)이 어떤 안전한 곳에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왕성하게 전했다고 합니다. 원어로 '흩어진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마치 씨앗처럼 널리 퍼져 많은 결실을 맺었다는, 즉,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왕성하게 선포하고 다녔다는 뜻입니다. 사단은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잔멸하여 남녀를 옥에 가두어서, 이제 교회는 망했고 자신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왕성하게 전하니 큰 기쁨이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큰 기쁨을 주셨을까요? 이 흩어짐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고 절묘함이었기 때문입니다. 흩어진 성도 중에는 이전에 흩어진 지역에서 모여온 디아스포라 교포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만국 공용어로 통용되던 헬라어를 쓰는 헬라파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언어적으로도 선교사 자질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 나가기까지는 힘들었지만, 유대가 흩어짐의 명분을 주니, 나아가서 사마리아뿐 아니라 이방인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처음부터 복음전파의 개척을 도우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어디까지나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그러니 빌립은 근본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워낙 성령의 조직으로 아름답게 양육이 잘 되어 있어, 비록 자발적으로 흩어지지는 않았으나 흩어지니까 금세 이렇게 양육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항상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연약을 끌어안고 사용하십니다.
둘째,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쁨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5절) 라고 했는데 지도상으로는 올라가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유대를 중심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힘든 곳이라는 말도 됩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한때, 북이스라엘의 수도이기도 했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뒤에 앗수르 사람들 말고도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많이 이주해서 통혼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방인보다 더 멸시하여 비천하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박해가 오니 흩어져,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유대인들이 가장 원수처럼 여기는 사마리아와 이방인 에티오피아 내시까지 전도합니다. 빌립은 그 누구도 못 하는 사마리아 전도라는 엄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구원의 대상지로 여기지도 않았던 원수 같은 곳이었고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키느라 빌립같은 평신도들을 보냈습니다. 4절에서는 흩어진 사람들이 전한 내용이 복음의 말씀인데 빌립이 전한 내용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잘 살고, 잘 죽으시고, 잘 살아나신 예수님, 즉 핍박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바로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빌립이 제대로 전한 것입니다. 빌립은 나사렛 예수가 바로 너희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야라는 것을 사마리아에 와서 전한 것입니다. '따르다'(6절)는 빌립이 놀라운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갖가지 이적도 행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는 의미입니다. 집중을 시켜야 됩니다. 아무리 행함이 있을지라도 말씀이 없으면 누구도 집중을 못하여, 말씀을 전할 수 없는데 빌립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빌립의 말도 들었을 뿐 아니라 행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과 지혜와 칭찬은 여기서도 통했습니다. 빌립이 사도도 아니고 도망가서 낮고 천한 자로 갔기 때문에 아픔이 있었고, 그래서 사마리아인들과 공감할 수 있었고 한마음이 되어서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기쁨입니다.
'따르더라'(6절)와 '귀신이 나가고'(7절)에 해당하는 단어는 미완료 과거 시제 동사들로 빌립의 사역이 지속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빌립이 강력하게 주목시키고 있으니까 귀신들이 계속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역은 귀신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역사하던 성령이 이제는 사마리아에서도 강력하게 역사해서 교회가 사마리아지역에서도 부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확실하고 교회가 믿음으로 충만하게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스데반 또한 집사의 신분으로 설교의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스데반이 인류 최고의 설교를 했는데, 치유의 역사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예수님과 같은 말씀과 이런 치유의 기적을 베푼 것입니다. 빌립이 병 고치는 역사는, 예수님처럼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빌립 속에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흩어짐으로 다 떠났는데 큰 기쁨(8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번역된 '카라'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기쁜 것을 뜻합니다. 또 성도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발생하는 외적인 현상을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과 기쁨은 동의어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은 기쁜 소식, 즉, 굿 뉴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모두는 아담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역시 빌립처럼 영혼 구원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기쁨이 널리 미치도록 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코로나19로 성령의 흩어짐을 허락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흩어짐으로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며 한 주 보내는 성도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