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번성]
행 7:17-29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율법과 성전에 대하여 옛 가치관을 따르고 있지만, 스데반은 이스라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고 계속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번성을 말해줄 모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번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시기)입니다.
첫째. 세상에서 번성과 학대의 때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며 사백 년 동안 종살이하며 그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리라 하는 것이 창세기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그 당시에는 막막하고 먼 후일에 성취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때가 찬 경륜에 따라 히브리민족이 애굽에 들어간 지 약 사백 년 후에 그대로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애굽에 간 이 일흔다섯 명의 가족을 애굽의 고센 땅에서 사백 년 동안 이백만 명 넘게 번성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요셉 때문에 흉년을 잘 지낸 것을 잊어버린 새 왕조가 들어서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든 노역으로 괴롭게 하고 벽돌을 굽게 하고 람세스를 건축하게하고 아주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씨를 끊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내버려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학대를 받는데도 점점 더 잘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적으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점점 살아나니까, 출애굽기에서 보면 고난을 주는 애굽의 세상 사람들이 도리어 근심을 합니다. 번성의 때 보다는 학대의 시기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쓴 약이 바로 이 학대입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서, 나의 도덕과 교양으로 남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말할 데도 없고, 돈도없는데 ,이 세상은 이렇게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슬프고, 예수 믿는 우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때문에 못 참습니다. 인간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어서 자존심 때문에 훈련 받는 게 너무 좋은 훈련입니다. 베풀어준 은혜를 모르고 교활하게 치사한 학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번성의 지름길이구나 이렇게 외우고 가시면 됩니다. 성령의 번성은 이렇게 육적인 번성과 학대를 허락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둘째. 구원자를 주십니다.
약속하신 때가 있습니다. 번성과 학대가 있는 그때입니다. 학대가 있으니까 부르짖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나면 모든 것이 카이로스의 때 즉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그냥 하루하루 살면 그게 하나님의 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학대의 그때에 모세의 아름다움을 본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흉년의 때에도 이렇게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위에 권세에도 순종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선순위가 최고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됩니다. 모세의 부모가 절박한 마음으로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성령의 번성입니다. 그런데 여기 버려진 후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부모에게 버려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이렇게 죽이지 않고 낳아주어서 예수까지 믿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번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정관념을 다 버려야 됩니다.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도 택자이기에 버린 후에도 하나님께서 기르셨습니다. 나는 버려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키워주셨습니다. 바로의 권세에 의해서 버려졌지만, 바로의 권세에 의해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신묘막측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여! 하는 것에는 정말 내가 어쩔 수 없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다 있는 것입니다.
셋째. 지체를 돌볼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모세도 태어나면서부터 고난을 받아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스데반은 변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사백 년이고 모세가 사십 살이 될 때까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를 기다려야 됩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전도하고 상담하고 방문해야합니다. 히브리 사람은 고된 노동을 버거워하다가 학대를 받았던 것인데 이것은 히브리 민족 전체의 고난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의협심으로 가득 차고 혈기왕성한 사십세 때의 모세가 아닌, 자기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겸손하고 연단 된 팔십세 때의 모세를 사용해서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기에, 하는 일마다 권위가 없고 자기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했건만 알아주는 자가 없고 황당합니다. 모세조차도 이런 수치와 수모의 학대를 겪은 후 성령의 번성이 임했기에 결국은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이 떠남을 모세의 믿음으로 칭해주시고 인정해주십니다. 내가 억지로 쫓겨났어도 내가 그래도 고난 받는 백성과 함께한다고, 내가 억지로 왔지만, 하나님은 믿음으로 떠났다고 인정해주시니 너무 정죄감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주는 것이 성령 번성의 시작입니다.
엄마에게 버려진 자매 이야기입니다. 미네소타 의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엄마 찾는 내용입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엄마에게 버려졌는데 한국에 있는 엄마 찾겠다고 티브이에 출연을 했습니다. 이 학생이 자기가 엄마를 찾고 싶은 이유는 엄마가 자기를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었는데 죽이지 않고 낳아주어서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너무나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예수를 믿고 늘 예배를 드리면서 친 엄마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는 이 엄마를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거라고 방송에서 말했습니다. 어떤 설교보다도 위대한 복음을 삶으로 그 학생이 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기쁨이 없이 늘 나를 왜 낳았냐고, 왜 나를 버렸냐고 한다면 무슨 성령의 번성이 주어지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번성은 세상에서 이렇게 번성과 학대의 때를 반드시 허락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구원자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 고난의 훈련을 거쳐서 한 사람을 돌볼 마음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번성이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