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떠남]
사도행전 7:1-8
인생이 100% 죄인이기에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때마다 성령의 얼굴로 떠나야 하는 성령의 떠남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령이 떠나게 하신다면
첫째,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스데반은 형제 의식을 가지고 천사의 얼굴로 부형들이여라고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높임말로 호칭을 했습니다(2절). 그리고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스라엘 그들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들의 선민 주의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에도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며 믿음의 몇 대손, 혈통 이런 것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친척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고, 메소보다미아 같은 세상에서 학벌과 권력 모든 것에 취해있는 누구에게도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구원을 받든 안 받든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둘째,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떠남이 없이는 약속의 땅으로 못 간다는 것입니다(3절).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 문명이 대단해서 떠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적용하면 알코올 중독자 부모나 완벽주의자 부모도 못 떠나고, 돈이 많으면 의지하느라, 없어도 무시하고 미워하느라 다 못 떠납니다. 예수 잘 믿는 부모와 같이 동역자가 되어서 걸어가는 것 외에는 우리는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부모가 천국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영광의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즉 잘 먹고 잘살 때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해 할 수 없이 질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미물만도 못한 인간에게 처음 공생애에 시작하신 일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마지막 질서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영육의 나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 아비가 죽으매 떠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의 이름은 데라로 연기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상을 섬기기에 아브라함의 진로를 방해하고 연기한 아버지입니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계속 있으니 결국 하나님이 데라를 죽이지 않으면 아브라함이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속사로 안 보면 이상한 설교를 제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맨 처음부터 믿음으로 잘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믿음 때문에 갈등하고 떠나면서 주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일평생 떠남이 계속되며, 결국 내가 아끼는 것은 하나씩 하나씩 다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옮기셨느니라(4절)이며, 내가 떠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구속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평범한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게 구속사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옵니다. 성경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죄인들의 구속사를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떠나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떠나라 해서 떠났고 그래서 옮겨졌는데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5절). 자식도 없이 떠났는데, 약속만 믿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았잖아, 예수 믿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하는 일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약속은 유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로, 이 약속이 온전히 믿어지기 위해서 나그네 된 인생을 살아서 종노릇도 해보고 아브라함이 떠났듯 자손들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떠나야 약속의 자손이 되니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6-7절). 아들을 부르짖다가 약속의 자손, 영적 자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진짜 약속을 못 받으며, 약속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내 자식이 고난을 겪어야 약속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축복의 말씀으로 들리면 세상이 감당을 못하는 믿음과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영적 자녀 낳는 것이 떠남의 결론입니다.
성경을 믿어서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고 한량없는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삭과 야곱에 이어 열두 조상을 낳으니 나는 형편없지만 내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나로 더불어 영적 자손을 낳게 하시로다.이것입니다(8절). 큐티하다 보니 하나님은 저에게 안 되는 것을 자꾸 겪게 해주셔서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 것을 보여주고 가는 그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13년 만에 우리 남편 한 사람을 주셨고, 남편이 할례를 받으니 그다음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최초가 너무 힘들지만, 최초의 아들 하나 낳으려고 떠남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속을 믿고 걸어가야 하고 그러면서 이 고난의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듣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은 만 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낳는 게 여러분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직장에서는 팀장이자 박사 학력의한 부목자님은 믿음은 없지만, 교회 다니는 신부와 결혼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동시에 이혼녀인 회사 직원과 잠자리를 가졌고, 결혼을 앞두고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강행했는데 그 직원이 결혼식에 와서 쪽지를 돌려 그날 파혼을 당했고, 직장에도 알려져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곤고한 차에 참석한 부활절 예배에서 예수님이 수치를 감당하면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감당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라는 설교를 듣고 본인의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큐티하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결혼을 깬 그 아이 엄마가 너무나 괘씸했지만, 다시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5년 만에 아이 엄마에게 연락했는데 아이 엄마가 세례받은 후에 결혼도 하고 싶다는 적용을 했습니다. 이런 적용이 바로 이 세상에서 떠나는 성령의 떠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 하나가 바로 나라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회사를 살릴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