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얼굴]
행 6:8-7:2
스데반은 힘든 상황에서 성령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성령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요?
첫째,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증인의 얼굴입니다.
성령의 조직 속에서 일곱 일꾼을 뽑았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 있는일곱 일꾼들, 그중에서도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까지 충만했습니다(8절). 그는 일곱 중 가장 탁월하고 완전한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이런 성령 충만한 믿음과 은혜로 권능이 충만하여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초대교회까지 그동안은 열두 사도들만이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는데, 사도들에게 안수 받은 이후로는 스데반과 빌립 같은 집사들도 기사와 표적의 능력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행한 스데반에게 축복이 아닌 알 수 없는 일이 찾아왔습니다(9절). BC 633년 로마의 유대 정복 과정에서 잡혀갔던 유대인 후손들이 해방되어 각 나라에서 돌아온뒤 각각의 회당이 생겼는데, 스데반이 회당에서 예수의 메시아직, 성전과 율법 문제를 계속 거론하니 사람들이 깊은 적개심을 갖게 되었습니다.어떤 자들이 일어났다라고 했는데, 각각의 회당에서 사람들이 스데반을 고소하고 계속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성전으로 상징되는 옛 체제와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부활의 체제가 서로 양립할 수 없기에,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과 논쟁을벌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거짓 증인을 지혜와 성령으로 물리치는 얼굴입니다.
내가 증인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거짓 증인이 등장합니다. 증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충만케 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니 매수한 자들이 나왔습니다(11절). 돈으로 매수해서음모를 꾸몄습니다. 예배가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서만 제한되어 드려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모세의 율법을 폐하는 것으로 몰았습니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훼방하거나 모독하는 것으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들은이렇게 스데반을 죽이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충동질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12절). 백성과 장로,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잡아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장에 세웠습니다. 학자들, 교양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스데반을 죽이는 데에 넘겼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충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요되는 백성이 나옵니다.사도행전 5장 26절에서는 성전 맡은 자와 부하들이 백성들의 반란이 두려워서 사도들을 강압적으로 체포할 수 없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지식 있는 서기관들의 매수와 충동질에 너무 쉽게 동요되었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갑자기 서기관들의 편에 다 섰습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웁니다(13절).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율법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피고인으로 섰습니다. 그들은 계속 성전과 율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수님이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성하러 왔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모세가 준 규례를 고칠 거라고 스데반이 말한 걸 들었다며 거짓 증거했습니다.유대주의에 빠져 말씀이 들리지 않고,문자적으로밖에 못 들으니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스데반을 죽이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대단한데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네가 감히 이게 무너진다고 할 수 있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조롱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스데반도 똑같이 조롱당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도 스데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증인 되어주시는 얼굴, 즉 천사의 얼굴 같습니다.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주시는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안 변하니 예수님도 이 성전을 너희가 헐라! 내가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지니까 무너지는 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복적인 사람들은 예수님과 스데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럴 때 죽이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얼굴이 천사 같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이 안 쉬어지는 환경에서 천사의 얼굴을 해야 예수가 증거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좋은 기회를 너무 자주 놓칩니다. 무너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무너지는 사건이 왔을 때, 내가 천사의 얼굴을 해야 우리의 인생이 빛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윽박지르면서 물어보는데 스데반은 부형들이여 들으소서(7:2절)라고 형제 의식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높입니다. 구원 때문에 상대방을 아버지라고 높이고, 형제라며 친밀하게 사랑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천사의 얼굴입니다. 그런데 대적하는 세력은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도 비난합니다. 이것을 이기는 길은 혈기 부리지 않고, 무슨 말을 들어도 얼굴이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아브라함부터 쭉 성경의 이야기를 합니다. 천사의 얼굴은 말씀의 인도를 받는 얼굴입니다. 물론 스데반이 이렇게 은혜로운 설교를 했어도 한 명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애통해 할 때 진심을 나타내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성령의 조직 속에서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주시는 얼굴 즉 천사의 얼굴, 성령의 얼굴이 되어 많은 열매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