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경을 읽으십니까?]
:독서법의 전통을 통해서 본 탄설의 성경읽기와 묵상
강영안 교수
눅10:25-37
성경 읽기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레슬리 뉴비긴이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인용하고, 외울 뿐 성경을 읽지 않는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지, 특별히 우리들교회가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방식을통해서 건강한 성경읽기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첫째.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담은 책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교사가 '무엇을해야 영생을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예수님은 답변을 하지 않고, 율법에 뭐라고 기록돼 있고,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늘 답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질문을 많이 던지셨습니다.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율법교사가 대답은 제대로 했지만, 그가 생각한 성경은 율법책이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지말라/하라고 명령한 계명이 613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율법을 주려는 율법책도 아니고 수많은 정보나 지식을 제공해 주는 책이 아닙니다. 디모데 후서 3:15-17절을 보면 amp#9312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amp#9313성경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amp#9314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amp#9315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선한 일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우리 자신과 관련지어서 읽어야 합니다. '네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교사는 그렇게 살겠단 순종의 대답 대신에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말씀을 알았지만, 자신에게 절실한 말씀으로는 읽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을 보면, 말씀을 나 자신과 관련해서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수도원 전통의 독서법은 성경 띄어 읽기- 중얼거리며 씹는듯하는 묵상-묵상한 말씀으로 하는기도- 관상의 단계로 음식을 먹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말씀 읽기 방식은 기도-묵상-시련, 고난의 단계입니다.루터는 기도와 묵상,삶에서의 고난과 시련이 신학자를 만들고, 참된 신자를 만든다라고 했습니다.이 전통으로 김양재 목사님의 성경 읽는 방식을 보니, 역시 기도를 먼저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영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읽는다고 저절로 뜻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본문을소리 내어 읽고, 눈과마음속으로 적어도 세번씩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사용한 묵상은 독일어로 트라이벤 운트 라이벤인데 밀고 닦고, 문지르고 비빈다는 뜻입니다. 마치 걸레질하듯, 말씀을 가지고 비비고 씨름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묵상하면서 적용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질문을 던져야 우리는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뀌게 됩니다. 삶 속에서 말씀으로 시련과 고난을 겪는단계는 자기 삶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는 것으로, 말씀이 나를 읽어내도록 나를 드러내놓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속에서 적용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적용할 때 비로소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김양재 목사님의 호를 써서 탄설의 해석학적 원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해석학적 순환관계라는 말은 부분은 전체를 통해서 이해되고, 전체는 부분을 통해서 이해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고난은 축복이라는 독특한 관점이 있습니다.기독교 전통에서의 고난은 저주, 벌로 여기는 게 일차적 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화해 가는 과정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우리가 엉뚱한 것들로 너무 많이 채워져 있다. 이를 뒤흔들어서 완전히 텅텅 비게 함으로써 하나님으로 다시 채울 수있게 우릴 만들어가는 과정이 고난이다.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나서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그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경 읽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성경읽기란 결국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구속사적 관점은 이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인 역사과정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죄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시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게 하시고 이 세상 끝인 종말에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역사, 이것이 구속사이고그 중심은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러나 구속사는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어 펼쳐가시는 역사이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 삶의 이야기로 함께 이 역사를 써 내려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누가 이웃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으셨지만,이야기를 통해 보여준 이웃은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강도 만난 사람이 바로 나였고, 예수님이 이웃이 되셔서 먼저 내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내가 다가가야 될 사람, 고난받고 고통받는 사람, 내 도움이 필요하고,내 시간과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건져내야 할 그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내가이웃이 되어줄 때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회복코자 하시는 제대로 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 읽기의 끝, 그 마지막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고, 내가 이웃되어주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레슬리 뉴비긴의 말에 이제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우리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웃이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