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선한왕 악한왕]
열왕기상 22:41~53
열왕기상을 끝내며 오늘 본문을 통해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과 악한 왕, 선한 리더십과 악한 리더십이 어떻게 다른지 보겠습니다.
1.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
1) 믿음의 부모가 중요합니다.
남 유다 왕이 새로이 등극할 때는 마치 공식처럼 어머니의 이름과 가족관계가 소개됩니다. 여호사밧의 외할아버지는 당시 이름이 나 있는 무인가문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딸 아수바는 버려진, 파멸의 뜻이 있는데, 아버지의 나라 사랑 때문에 딸이 버려진 마음으로 파멸한 것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호사밧은 절망을 맛본 어머니 아수바의 기도 때문에 선군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수바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살 소망이 끊어져서 자신에 대해 절망했기 때문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이름까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믿음으로 구속사를 잘 해석한 믿음의 명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석을 잘하면 믿음의 명가가 될 줄 믿습니다.
2)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과 정직히 행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정직히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인 규례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인생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곁에 항상 머물러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서는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혼자서 정직하다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이 되어서 남을 찌를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정직을 알게 됩니다.
3)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지은 후에 한곳에서만 예배를 드리라고 했는데,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후 나라가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니 산당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산당 예배가 고질적인 종교적 범죄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 생활을 잘한다고 해도 급할 때는 하나님만 부르짖다가 조금만 편해지면 필요한 게 많아 다양성을 추구하며 죄의 길로 갑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우상숭배의 온상인 산당은 폐하지 않았습니다.
4)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남북은 일평생 전쟁이 계속되었다고 했는데, 여호사밧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백 만 대군을 길러내고 남북이 모두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니까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를 맺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개혁을 하던 여호사밧도 그 환경에 가니 장사가 없습니다. 이 정략결혼으로 아람과의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지금이라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 같은 이 결혼동맹으로 한사람 아달랴가 시집가서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비롯한 모든 불법이 남유다로 흘러들어갔고, 아달랴의 엄청난 살육으로 남 유다의 다윗 왕조 자체가 끊어져 예수님도 못 올 뻔한 큰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 후, 여호사밧은 절대 권력으로 선지자를 무시하고 전쟁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회개하고 나서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모압과 암몬을 정복했습니다. 똑같은 전쟁 같지만 전쟁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기에 날마다 공동체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물어야 합니다.
(5) 마지막 징계로 유턴하는 사람입니다.
45절에서 여호사밧의 최종평가가 끝난 것 같은데 몇 절을 더 추가한 것은 여호사밧이 선한 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되찾고자 약속의 자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에돔에서아하시야와 함께 배를 만들고 금을 구하러 보냈는데 그 배가 에돔의 영토인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여엄창난 국가적손해를 보았숩니다. 선지자 엘리에셀에게 들은 말이 있어 회개한여호사밧은부를 축적할 기회를포기하고 다시 가자는 아하시야의 제안을 거부하고 교제를 중단했고, 아버지 아사 시대에 남아있던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치명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선한 왕으로 남게 된 최고의 비결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야.
아합이 죽은후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한 아하시야는 악한 왕으로 기록이 됩니다. 아하시야가 한 일은 아버지 어머니의 길 여로보암의 길로 가서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바알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기를 그 아버지의 온갖 행위같이 했다는 것이 아하시야에 대한 총평입니다. 여호사밧은 연약함으로 결혼동맹이라는 실수를 한 것이기에 반면교사의 역할모델이 되었는데 아하시아는 자발적으로 바알을 섬기고 죄책감도 하나없이 고의적으로 적극적으로 세상을 섬기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53절에 그는 아버지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다고 했는데, 여자의 머리가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아합의 악을 한 번 더 지적합니다. 그리고 아합이 죄를 많이 지었지만 아하시야로 왕위가 순조롭게 계승된 것은 말년에 하나님이 아합의 겸비함을 보시고 심판을 다음 시대로 유보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조금이라도 회개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목장 보고서에서 여호와 앞에서 악한 아하시야 같은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회사 창업주의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창업 당시 그분 삼촌이 목사님이라 예배도 드렸었는데 몇 달 후 교회도 안 나가고 조강지처까지 버리고 회사 여직원과 재혼을 했답니다. 회사상장으로 직원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주식까지 다 챙겨서 가져간 악한 창업주였고, 상장할 때 240억의 회사를 팔고 갔는데 과연 그 돈으로 자식들이 어떻게 살까가 궁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창업주는 췌장암으로 죽고 자녀들은 이혼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아도 여로보암의 길로 가다가 망해서 지옥 갔다는 것이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야의 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재앙을 통해 유턴하고 아무리 부족해도 여호와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이 선한 왕이 되는 비결입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여호와 앞에서 선한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