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열왕기상22:1 - 12
우리가 대부분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겸비함은 사라지고 주님도 멀리하고 교만해집니다. 또 다른 과시를 위해 일을 꾸미게 됩니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 장인데 여전히 계속 이겨야 하고 과시하는데, 오늘은 아합처럼 전쟁이 삼 년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또 다른 세상 전쟁을 꾸밉니다.
아합에게 삼 년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주어지니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간은 아합에게 자신의 악한 만행에서 돌이키고, 자녀 대로 유보된 심판에서 겸비함에 맞는 회개하는 태도로 돌이킬 분명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아합 같이 세상만 보는 사람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두 번이나 승리했기에, 악인으로 심판받을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내 실력이고 지면 남 탓,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 나오던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남북은 동맹을 맺어본 적이 없는데, 아합과 이세벨의 딸과 여호사밧의 아들이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은 결국 위기를 가져왔습니다.남북은 둘이 서로 섬기는 신이 달라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악한 아합이지만, 강국을 세 차례나 이겼기에 아합의 위상이 여호사밧보다 높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사밧이 혼인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쟁하면 이기겠지 싶어서 북으로 내려왔습니다. 북으로 올라갔다고 해야 맞는데 내려왔다고 표현한 것은 성군인 여호사밧이 아합과 이세벨의 악의 영향력으로 영적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예표이기에, 그렇게 악한 아합을 도우면 안 되었습니다. 아합인 길르앗 라못을 찾자고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못 깨닫습니다. 아합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전쟁을 통해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벤하닷이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금 안 지키니 이제는 찾아오겠다는 명분과 실리가 있는 계획을 꾸밉니다. 아람은 여호와가 두려운데, 아합은 자기가 잘나서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를 버리면 지는 싸움인 것을 다 아는데 그만 모릅니다. 벤하닷과 아합이 삼 년 동안 회개하지 않으니 둘이 교만하기가 똑같습니다. 지금 아합 같은 사람은 깨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이 올라오고 아람을 물리치겠다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편하게 된 것이 원인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종교적, 군사적, 상업적 이유에서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탈환해야 할 성읍이 길르앗 라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아합은 여호사밧을 아주 충동질하고 자극해서 꼬드겼습니다. 이는 여호사밧이 긍정적으로 참여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남북이 약속하고, 연대하고, 벤하닷과 아합도 약속했지만, 지금 또 쳐들어간다고 하니 약속이 다 필요 없습니다. 남북은 내 백성이 당신의 백성이 내가 당신과 같다고 하면서도 남북은 계속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아람과도 형제여 하며 내 것은 당신 것이라고 외쳤지만 지금 보니 북이스라엘도 유다도 아람도 모두가 자기가 한 약속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물을 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합니다.
여호사밧이 이 일의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어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께 묻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혼자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물어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안 물어보면 자기 생각대로 하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이렇게 처방을 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여호사밧으로부터 하나님 말씀을 구할 것을 권고받고 아합은 선지자를 사백 명이나 모았습니다. 아합이 나봇까지 죽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사백 명의 선지자들은 아합에게 한마디도 못 하고 아니오(No)를 못합니다. 그러니 다수가 옳은 게 아닙니다. 아합의 대적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그렇고 미가야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수장인 이 사람이 선지자들과 일생 전쟁을 하면서 갑니다. 역대하를 보면 여호사밧이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진실한 선지자를 찾으니, 아합은 미가야가 남아있다고 대답합니다. 아합은 자기중심적이기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길한가 아닌가만 중요합니다. 엘리야를 그래서 죽이려고 했고 미가야도 증오합니다. 아합은 자기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전쟁을 앞에 두고 듣기 싫은 말,흉한 말을 들으려고 하니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아합으로 하여금 죽음의 길로부터 돌이킬 기회를 또 주시는 것입니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합을 보고 계시는데, 아합은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을 메시지로 받아야 됩니다.
셋째.길한 말만 듣기를 원합니다.
두 왕이 왕복을 입었습니다. 왕의 자격으로 공식행사에 참여했는데, 그사백 명의 선지자 집단이 이렇게 예언을 했다는 것이니, 공개적으로 예수 무당이 전하는 말을 듣는 풍토가 공공연히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로부터 예언을 듣는 이 자리에 미가야를 불렀습니다.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하여 철로 된 뿔을 만들어 주면서 이걸 가지고 아람 왕을 물리칠 거라고 합니다. 철 뿔로 아람을 찔러서 이길 거라고 실감 나게 예언을 했습니다. 사이비 선지자가 말씀을 갖고 철 뿔로 예언하니 흥분한 아합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모든사백명이 다 같이 올라가라고,라못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승리한다고, 왕이 최고라고 왕의 손에 넘길 거라고 하는데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해 예언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들 자기를 위해 만들기에 보기에는 멋있는 철 뿔이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공동체 나눔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듣기 전까지 자신을 아합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엘리야라고 생각했고 아내는 이세벨과 반대로 나를 대적자라고 부르고 올바른 소리를 해주니 내가 아합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니 아내가 회개하는 척만 하는 거니까 다 속지 마시라.고 계속 흉한 말을 합니다. 이처럼 흉한 말이 대단한 말이 아닙니다.목장에서부터, 부부간에 먼저 찾기 바랍니다. 바로 이렇게 길한 말을 듣기 싫어하는 우리가 흉한 말을 듣기 원한다면 말씀 듣는 구조에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묻고 서로 물어봐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보고 겸비하며 회개가 계속되고, 전쟁이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닌 것을 알고, 우리들의 각종 전쟁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축복인 것을 알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