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
열왕기상 21:17~19
첫째, 여호와의 말씀으로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표현은 선악의 절대기준이 사람이 아니고 여호와께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우리에게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원죄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가 가장 큰 죄이고 결국 우리 모두 이런 생각으로 이혼하거나, 회사와 교회와 나라를 분열시킵니다. 이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여호와 앞에서라고 했으니 우리가 여호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자, 율법 자체이신데, 즉 말씀이 내게 찾아와야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율법적 관습을 이용해서 권력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나봇의 적용으로 아합을 심판하실 때에 엘리야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깨달아지는 것으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여호와의 말씀이 가는 것이기에 악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이 음모를 꾸미고 다 죽였는데도, 하나님은 계속 아합에게 죄를 묻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이 아니고 아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항상 책임을 지는 자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가져도 영원히 목마르기에, 아합은 상아 궁에 거해도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는 채소밭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반드시 사주는 이세벨의 눈먼 사랑 때문에 아합의 자기 중심성이 발전한 것입니다. 영원히 상속되어야 할 기업을 빼앗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적 삶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약속의 땅에서 끊어지게 하는 중요한 범죄였기에, 하나님은 심판의 경고를 하셨습니다. 아합이 의인인 나봇을 돌로 쳐 죽여서 그 피들을 개들이 핥게 했기에, 아합에게도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삶은 우리 삶의 결론입니다.
둘째, 선지자를 대적자로 생각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나의 대적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나를 찾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은, 그 마음 한구석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징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합의 죄가 무거운 것은 이전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도 네가 너 자신을 팔아 악을 행하였으므로처럼 능동적으로 죄를 범해 죄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속한 모두가 멸망의 대상이 되며, 모두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더불어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을 행해도 여호와가 보시니, 그 눈길 안에 들어가는 예배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아내에게 충동 되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25절 말씀에 아합이 자신을 팔았다고 합니다. 충동에 넘어간 아합의 죄가 더 큰 것입니다. 아합이 죄의 종이 된 것은 그 안에 욕심이 있어서 이세벨에게 충동된 것이기에 하나님은 아합에게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욕심이 없으면 아무리 유혹해도 안 넘어갑니다. 아합은 너무나 부드럽고 유약한 어린아이 같지만, 그 안에 욕심이 충천합니다. 그리고 이 욕심을 이세벨이 다 채워줍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이세벨의 완전범죄로 끝날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만나서 이런 악을 행하게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약한 것을 충동질하면 안 됩니다. 아합과 엘리야와의 만남에서 진짜 괴로운 사람은 엘리야이지만, 아합은 엘리야를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며 대적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모든 절대 선악의 판단은 여호와 앞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아합이 씻고 동이고 금식하고 누우며 다니더라.의 다섯 개 동사가 나오면서 아합의 회개가 마치 눈앞에서 이루어지듯 자세하게 표현합니다. 옷을 찢거나 굵은 베로 몸을 동이는 행위는 구약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회개의 모습이고, 금식도 강력한 자기 부인의 표현입니다. 29절에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를 들으시고 그가 내 앞에서 겸비했기에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시며 너무 좋아하십니다. 정말 말 안 듣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입니다. 내 옆의 아합 때문에 기다리고 참으라고, 하나님도 이렇게 참고 가신다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징계하시지만, 회개하면 죄인 자체는 즉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기에, 여호와가 구원해주셔야 이 죄가 사해집니다. 그러나 아합의 죄에 대해 세상은 그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지금 법안을 하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면 어느 나라든지 인권이 왕 노릇 합니다. 절대 선악의 기준은 오직 여호와 앞에서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성도들이고 교회입니다. 이때를 위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도 나가야 합니다.
이번 주 공동체 고백은 어떤 초원님의 아버님이 친필로 쓴 기도문으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 과정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을 60년간 떠나 계시다가, 아합처럼 심판의 선고인 골육종암 선고를 받은 후 아들이 꾸준히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시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유가족들도 신앙생활을 잘하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내 욕심이 충동 되어 심판을 받아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주시는데, 우리가 다 이 여호와 앞에서 살며 주님이 보시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이렇게 주님의 관심을 받는 인생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