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하라]
계 12:12~16
어떤 사람이 즐거움의 순서는 관계를 잘 하는 것, 밥 먹을 때, 잠 잘 때, 사랑할 때, 성공했을 때라고 했다고 합니다. 모두 맞는 이야기지만 어떻게 해야 관계를 잘 하고,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는 것일까요?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야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즐거움에 참여해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10장 처음에 큰 이적이 하늘의 전쟁이라고 했는데 하늘의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제목처럼 하늘의 전쟁은 즐겁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즐거워하라고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마귀는 결정적 패배로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크게 분노해서 땅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 마귀의 때가 얼마 안 남았고, 결국 마귀도 불과 유황이 있는 둘째 사망, 즉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모든 인류를 끌고 가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합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우리를 그들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것인데, 성도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기에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로잡힌 사람들을 구출하러 이 땅에 오셔서 제일 강한 사단과 싸워 이기시고 결박했기 때문에 즐거워하라고 명령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사단이 아무리 크게 분을 내어도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십니다. 사람이 화를 극심하게 낼수록 사단의 때가 얼마 안 되었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분별하며, 사단이 쫓겨나면 구원이 일어날 것을 믿고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사람은 사단이 아닙니다. 그 속에 사단의 세력이 들어간 것입니다. 사단의 정체를 분별하면 아무리 화를 내고 난리를 쳐도 그 사람 자체가 밉지 않습니다. 구원의 세력이 입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놓고 보지 못하는 것을 증거하면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건 내 속에 말씀을 막는 사단의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사단이 늘 싸웁니다. 내가 물리치면서 가야지 다른 사람 속의 사단의 세력도 물리쳐 줄 수 있습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잘 기다리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핍박도 양육의 시간이기 때문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예수를 낳은 여자, 즉 교회를 핍박한다고 합니다. 핍박하다는 헬라어로 쫓다 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데, 돈, 여자, 명예, 학벌, 술, 세상 성공을 향해 좇아 갈수록 예수 잘 믿는 여자는 꼴도 보기 싫은 겁니다. 내 속의 예수가 강해지면 사단은 점점 자기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여자인 경우 신경질을 내고 남자는 주먹질을 하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안 되고 망하면 예수 믿는 사람부터 핍박합니다. 이런 핍박을 받는다면 여러분들은 굉장히 예수를 잘 믿는다는 표시입니다. 변하기 전의 사도 바울은 열심이 대단했고 뭔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진짜를 모르니까 열등감이 많고 평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열심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십니다. 사울이 스데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을 주님이 무의식중에 건드렸고, 무의식 속에 영적 괴로움과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죄책감을 잊으려고 불안하고, 죄의식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을 참소합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위협과 살기가 등등합니다. 이런 사울에게 주님이 찾아와 주시므로 영적 도덕적 괴로움이 한 방에 날아갔고,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은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대의를 위해 겸손하게 살기를 바란다.' 라고 했습니다. 겸손 없이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핍박했던 사울을 양육하여 변하게 하십니다. 14절에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양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똑같은 이야기가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즉, 모세의 미디안, 다윗의 피난지들, 바울의 바다와 감옥, 사도 요한의 밧모섬, 세례 요한의 빈들, 엘리야의 호렙산, 요나의 물고기 뱃속, 로마 기독교인의 지하감옥처럼, 위기 때마다 주님이 허락하신 피난 장소가 우리의 광야이고 양육의 장소입니다. 각자 허락하신 광야에서 양육을 잘 받고 세상의 종 사단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 어떤 조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광야로 가서 양육을 잘 받고 핍박과 참소를 넘어서려 하는데, 사단이 물을 강같이 토해내어 흘러 떠내려가게 합니다. 편안함과 안일함, 쾌락주의, 자본주의, 무신론, 우상숭배, 세속적 유혹들, 휴머니즘, 과학주의, 이단, 세상 풍조와 같은 조류가 계속 흘러와서 교회를 괴롭히고 성경적 가치관이 강같이 떠내려가도록 공격합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땅이 도와 강물을 삼키는데, 고라 당이 모세를 대적할 때 땅이 악인을 삼켰고,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할 때도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와 못 쫓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를 죽이기 위해 준비 중이던 일본을 원자폭탄으로 심판하시고 8월 15일 광복을 맞게 하셨습니다. 100년 전, 32살 독신으로 왔던 故서서평 선교사님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라는 좌우명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적으로 과부, 고아를 양육하고 개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즐거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가난하고 불쌍하고 나병걸린 조선의 여인들과 아이들의 아픔을 만져주고 가장 크게 기뻐했다고 편지를 쓴 것은 하늘나라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즐거움이 우리를 강물에 떠내려가게 하지만 휩쓸리지 말고 즐거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항상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