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복]
이승민 목사
요 21:15~25
작년 KBS 다큐멘터리 ‘동행’에서 항암투병 중인 부부가 큐티인으로 나눔하는 장면을 보고 수소문 끝에 찾아갔습니다. 딸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돼 남편은 대장암4기, 아내는 림프종 4기 진단받았고, 시어머님은 우울함으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은 날마다 새벽 큐티 끝부분에 항암 중이신 목사님을 위한 기도가두 분을 위한 기도 같아 너무 위로받는다는 감사하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회복은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을 오히려 저주, 부인했다는 절망감에 끝없이 마음이 추락합니다. 요한복음21장 3절에서 베드로가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가면서 정말 내 인생은 되는 게 없어라고 생각할 때 주님은 실패의 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부르시던 그 음성으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르시며 다독여 주십니다. 저는 고1 때 만난 주님이 너무 좋아 베드로처럼 평생 주님을 따르겠다고 헌신했지만,묻지 않고 듣지 않는 교만으로 교회 일을 혼자 하는 것처럼 뛰어다니다 담임 목사님께 공개적으로 치리를 혹독하게 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개방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빨리 회복해서 미국에 가고자 무리하게 급성치료를 하며 혼자 병원에 한 달간 처박혀 있을 때, 주님께서 디베랴 호수에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처럼병원 옥상에서 시편40편 1절 말씀 ‘내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로 먼저 찾아와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반응해 실컷 울고 나니 마음 속 응어리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첫새벽설교 복귀 때 많은 성도님의 위로와 답글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음성 같아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회복은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고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신다.’고 세 번 대답했습니다. 원어인 헬라어로 보면 두 번은 아가페의 사랑을 물으시고 마지막엔 주님께서 필레오의 사랑으로 내려오시며 네가 그럼 필레오의 사랑 정도로는 나를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그리고 칼로 저미는 근심에 마음 그대로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다 아시며 그 고백은 주님께서 듣고 싶으셨던 말이었습니다. 미국 유학 길이 막힌 것, 제가 치리 받던 중 아버지가 두 번이나 치리 받으신 것과 아버지의 혼외자 사건이 드러난 것과 딸이 갑자기 쓰러지는 사건은 모두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세번째, 회복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회복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영혼 구원의 대상이 15절에는 어린 양으로 나오지만, 16절, 17절에는 그냥 양으로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형편없는 죄인임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어린 양, 성숙한 큰 양을 넘어 18절에 순교의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닌 겸손입니다. 베드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겸손한 고백을 드러내시기까지 주님께서 어쩔 수 없이 사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함께 했던 목장 식구들이 기억이 많이 납니다. 돌아보니 그때 목자로서 제가 그분들을 돌본 게 아니라, 그분들이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네번째, 회복은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볼 때는 마음이 참 뜨거웠습니다. 제가 주님의 양을 먹이겠습니다. 사랑이 회복되어 뜨거웠는데 요한을 보자 그 마음이 딱 식어버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서로 너무 달랐는데, 베드로는 주님 일을 늘 앞장서다 대형사고를 치는 반면에 요한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그래서 비교하다 또 혼납니다. 22절에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야단치시며 너에게 맡겨 주신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내가 못 살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살아서 힘이 들고 비교합니다. 사명은 각자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학벌이나 사역 경험이 아니라 고난의 양만큼 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만 하면 담임 목사님께서 혼내십니다. 항암 과정 중에도 혼내셨는데, 일 할 때마다 묻지 않고 듣지 않으니 저의 아킬레스건입니다. 마지막 24절과 25절에서 요한은 드디어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이 책 저자인 자신이었다고 밝힙니다. 이런 요한을 참 닮고 싶었습니다. 몇 십년이 지난 후 이런 일을 기록하면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부각시킨 그의 겸손함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찾아가신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그 실패의 자리로 찾아와 주실 때 내 죄의 연약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