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열매에 관하여]
정갑신 목사
왕하 20장 1~6절
우리는 종종 "나는 A를 심은 것이 분명한데, 왜 B가 나왔을까?"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도와 목적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 이런 생각을 하고, 특히 자녀를 양육할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심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볼 때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수 없는 결과가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 모습입니다. 1960~80년대 믿음의 선배들은 순수하게 헌신했는데우리는 다음 세대를 다 잃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복음화 비율은 3%로 떨어지고, 대학교 캠퍼스 사역도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A 안에 B라는 결과가 나올만한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어떤 원인 때문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히스기야는 많은 왕 중에서 특히 다윗 왕에 비견될만한 믿음의 왕이었고 믿음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또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 앗수르왕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기도로 도우심을 구해 승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도좋고 큰 업적을 남긴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고, 믿음의 기도로 15년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병이 나은 후 아들 므낫세를 낳았는데 그는 남유다 전체를 우상숭배 국가로만드는 등 가장 사악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요?
병에 걸렸을 때 히스기야의 태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죽음의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에 등을 돌리고 벽을 보고 통곡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삐진 것이죠. 그 시대에 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은 저주인데, 믿음으로살았던 히스기야는 저주받은 인생으로 끝날 정도로 잘못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내가 행한 열심과 헌신 수고의 정도를 신으로부터 보상을 기대할만한 근거로 삼는 종교 행위입니다. 신의반응을 나의 행위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결국 최종적 조정자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다음 세대가 이렇게 무력하고 왜 다음 세대를잃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녀들에게 종교생활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하면 하나님께서 해주시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거야.'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이 결정된다는 하나님 사용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돈, 친구, 공부와같이 쓰기 쉬운 방법이 너무 많으니 하나님 옆에 있는 것이 싫어집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낫는다고 말씀하시고 이사야를 통해 치료행위를 하고 다 나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내가 낫는다는 진짜 증거를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말씀보다 내가 설득되고 이해할만한 객관적이고 믿을만한 증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것이 이해가 돼서 믿어지는 것은 믿음이나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자기의 판단, 이해, 견해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불합리해 보이는 선악과입니다. 이해가 돼서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금하신 하나님께서 옳으시고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질병에 관심을 두고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히스기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백성들을 섬겨야 하는 백성의 주권자인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백성을 책임져야 할 공공적 존재인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 종 다윗을 위함으로 다윗과 맺은 언약의 관계 때문에 응답하시고 동시에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응답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내 문제 해결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에 하나님께서 15년을더 연장해 주시겠다는 말씀에 "왜 15년이어야하죠?" 묻지 않습니다. 사실후계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후계자를 낳아 준비시킬 최소한의 기간으로 15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응답을 받았을 때 내포된 뜻을 물어야 하는데, 끝내 묻지 않았고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병에서 나은 후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과 성전에있는 모든 보물을 보여주며 나와 손잡은 것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손해 보는 것 아니라며 과시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네가 보여준 보물들을 바벨론에게 모두 빼앗길 것이고 포로가 될 것이라는말씀에 히스기야는 "주님의 뜻이라면 선하다"라고대답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별문제가 없다면, 주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므낫세가 태어나고 자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A를 심었는데 B가 나온 것이 아니라, 히스가야가 B를 심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축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정에도 어떻게 이런 애가 태어났을까 했던 딸이 있습니다. 항상그 딸 때문에 우리 부부는 노심초사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사랑하셨는데 그런 사랑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회개하게되었습니다. 딸에게 "너의 존재를사랑할게." 고백하며 사과하니 딸아이가 보고 싶어지며 정말로 그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큰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면서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고 늘 진리를 말하고사람들이 반응해 주니 내 존재가 진리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는 그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진리 앞에 서서 자리를 잘 지키고 겸비하게 주님께 늘 질문하며 주님의 뜻을 좇아 순종했으면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로 삶을 채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