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위기]
레10:1-20
이태근 목사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 제사장 그룹과 백성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모세 한 사람이 말씀 속에서 늘 깨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기 1장 1절부터 읽어오는 가운데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맞이한 지체들의 아픈 소식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년부 출신의 젊은 부부와 태아에게 신앙의 위기, 생명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어떤 위기를 겪고 있습니까? 신앙과 삶의 위기를 통과하려면
첫째, 사건 앞에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장 7절 말씀에 보면 성막 안에 들어가서 금 향대에 향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대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아론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지고 분향하다가 그 자리에서 불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의 공명심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다가 불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를 살피지 않으면서 자기 향로를 가지고 성막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저처럼 치리를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신앙과 삶의 어떤 위기를 만나셨습니까?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고 하면서 각기 자기 향로를 취하고 다른 불을 담지는 않았습니까? 주님 앞에서 나를 살피지 아니함으로 받은 불 심판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사건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두 아들이 죽은 사건 앞에서 아론이 잠잠합니다. 사건 앞에서 잠잠할 수 있는 것이 영성입니다.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한 주간을 잠잠히 살다가 목장과 교회에 나와서 기도시간에 외치며 부르짖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절 말씀에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다’는 것은 백성들은 마음껏 슬퍼할 수 있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은 마음 놓고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남편은 남편의 자리로, 아내는 아내의 자리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슬퍼할 때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을 때가 옵니다. 여전히 주어진 사명이 있고 여전히 맡겨진 것이 있고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잠해야 할 때와 외쳐야 할 때를 잘 분별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 사건 앞에서 잠잠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과 삶의 위기를 통과하려면 셋째, 사건 앞에서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합니다.
지난주 주일 말씀에 성령의 역사가 말씀이 없는 자들에게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은 조롱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술에 취하면 분별력이 흐트러지지만 성령에 취하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위기를 통과하려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고 성령에 취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사건을 만나면 가장 먼저 담배와 술을 찾습니다. 사건 앞에서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술, 사건, 돈, 내 생각과 감정에 취해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에 취해 있습니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함이 나에게 있습니까?
신앙과 삶의 위기를 통과하려면 네 번째, 사건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남은 고기를 먹게 하신 이유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사명이 있기 때문인데 아론과 남은 두 아들이 숫염소의 남은 부분을 먹지 않고 그냥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첫째와 둘째도 율법을 어김으로 죽게 되었는데 아론과 남은 두 아들이 정면으로 율법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19절, 20절 말씀에 반전이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의 죄를 살피지 못함으로 욕망과 탐심에 사로잡혀서 공명심에 불탔는데 아론과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자기의 죄와 연약함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이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필요한 직분입니다. 우리 목사님이 지난 십삼 년 동안 악하고 음란한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십자가의 피로 그 죄를 씻고 성령의 불로 그 죄를 불사르며 처리되지 않고 남은 그 부분들을 목사님이 먹고 마시며 소화를 다 시켜서 눈물로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해석해주셨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지난 십삼 년 동안 그 모든 것을 먹고 마시며 소화시키시느라고 몸에 병이 나신 것 같아서 말씀을 준비하며 한 주간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공동체 고백으로 한 목자님께서 목자 초원 카톡방에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아내 집사가 아들의 결혼 날짜를 받으러 점집에 갔는데 천우제를 지내라고 했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기가 막히지만 나답과 아비후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죄인지도 모르면서 내 죄를 먹고 마시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족과 지체들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내가 먹고 마시며 소화를 잘 시켜서 눈물의 기도와 말씀으로 잘 해석해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