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행2:13-21
김영란법으로 나라가 요란한데 모 교단 총회장 입후보를 부탁하며 2천만 원을 건넨 어떤 목사님이 고발을 당했습니다. 눈만 뜨면 교계의 비리와 부패로 도배되니 곤욕스러운데, 정말 교회가 본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개척할 때 우리들 교회의 사명을 생각하며 개혁의 길목을 여는 라합처럼 일하길 기도했습니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됐는지 모든 것에 말씀 적용을 하고 온 13년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한지는 내가 미운 사람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아직도 싫고 좋은 것이 너무 분명하고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 충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 충만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선물로 받은 자라를 사기그릇에 넣고 여름 내내 봤는데 끝까지 올라갔다가는 떨어지기를 반복하니 정말 안됐더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도 이렇게 잘 고였다 넘어가야 하는데 잘 넘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막힌 것이 뚫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는 사람에게 성령강림이 임했어도 세상은 또 그 성령 충만한 사람을 조롱합니다.
첫째로 성령 충만은 조롱 받을 수 있습니다.
바람은 남편이 피었는데 ‘나 때문에 당신이 수고했다.’라고 용서를 구하고 이해 못 할 애통을 하니 비웃고 조롱을 합니다. 세상은 이해 못할 방언이지만 이것이 전도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인내와 거룩한 행실의 이유가 필요합니다. 불신자에게는 이렇게 설명하고 신자에게는 왜 거꾸로 용서를 구하는지 말씀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의문을 품는 자에게 언제라도 대답할 말을 예비하기 위해 성경을 신령과 진정으로 읽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열한사도와 같이 서서 했습니다. 우리들 교회 설교인 공동체 고백, 목장 예배, 간증 모두 함께 서서 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 충만 받는데 가장 적이 됩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조롱 받는 이야기부터 나옵니다.
두 번째 성령 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복음 전할 때 너희 생각과 다른 것이 있다는 걸 객관적으로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온유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인격입니다. 그러나 술 취했냐고 조롱을 하니 전도하다 싸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언어로 온유하게 대답하는 이것이 세상을 끌고 가는 능력입니다. 너희 생각은 취했다고 하는데 그걸 뛰어 넘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도 성경으로 시작하는 게 최고의 설명입니다. 베드로의 성령 충만의 결과는 말씀 충만 입니다. 수요예배 때 레위기로 간증하신 평원님처럼 우리들 교회 갔더니 대단한 학벌과 미모에 모든 걸 갖춘 사람들이 남편에게 욕먹고 매 맞더라 하면 사실 굉장히 조롱 받을 이야기지만 신앙은 내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고 세상을 끌고 갈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넓은 품의 성령 충만한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레위기의 힘없는 제물로 목장에 내놓으니까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성경으로 조목조목 내 인생을 재물로 드리는 최고의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성령 충만은 내 인생의 말세에 임합니다.
성령이 임해 나타난 예언과 환상과 꿈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허상에 불과 합니다. 내 개인의 말세는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 옵니다. 내 인생의 말세를 인정하는 것이 제일 축복입니다. 자녀들은 앞날을 모르고, 젊은이들은 쾌락 속에 살며, 늙은이들은 꿈이 없는 게 특징인데 영으로 육체에 부어주시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영으로 부어 주다.’는 ‘쏟는다’는 말과 같은데 ‘사모하는 자의 은혜의 샘이 터지는 것’으로 이 일을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건에서 구원인지 진노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말세와 한계를 보지 않는 부모가 자녀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헛된 기도입니다. 오늘이 바로 내일을 만드는 시간이므로 우리 마음가운데 세상 비전이 아닌 거룩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느냐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열 두 제자 중에 유다를 대신할 맛디아 한 사람을 채우지 않으면 사도행전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 한 사람이 중요하고 이렇게 성경으로 설명이 돼야 합니다.
네 번째 성령 충만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모시면 예언과 환상과 꿈으로 거룩한 권능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할 때는 항상 환란의 때가옵니다. 나의 해와 달인 돈과 남편과 자식과 건강과 직장을 잃고 어두워져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릅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출애굽기 15장에 애굽에게 내린 질병을 믿는 너에게는 하나도 내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조롱을 당해도 전파하고 설교했기에 지금까지 복음이 세계로 전파됐습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생각의 막힌 것이 뚫리고 대인관계에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상대방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 다면 내가 확신이 없거나 전하는 능력이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전도가 학벌과 하나도 상관이 없는 것을 보니 확신의 문제인 거 같습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한 집사님은 얼마나 성령 충만한지 애를 써도 교회에 안 오던 아들이 몇 번 온 것만으로도 공부 잘하는 애 엄마보다 더 훨씬 성령 충만 했다고 합니다. 울어야 마땅한데 성경적 가치관으로 충만하니 모이면 기쁜 교회가 우리들 교회입니다. 자라처럼 내 인생이 날마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올라갔다 툭 떨어지는 게 도리어 축복일 때가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