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
행1:1~2
우리들교회는 별 프로그램이 없이 큐티밖에 한 것이 없는데 부흥이 되었습니다. 우리만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한국교회에 알리도록 하나님께서는 ‘목욕탕 큐티 목회세미나’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성령의 권능을 받은 저와 우리 평신도들이 사도들처럼 가르쳤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우리들교회를 건강한 교회이자 본질이 살아있는 교회라 칭해주시며 계속 섬겨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절로 사도행전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을 설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그야말로 성령행전, 우리들행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어도 부활의 목격자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초대교회 모든 일을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님과 바울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자기 이름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누가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이 1, 2절을 가지고 교회의 사명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전도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제 단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신 후에 그의 사역을 계속해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사명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먼저 쓴 글인 누가복음을 가지고 데오빌로를 양육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말씀으로 나누고 기록한 ‘큐티인’을 가지고 이번 명절에 찾아가 전도해야 할 여러분의 데오빌로는 누구입니까?
둘째,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양육하는데 일생을 살아도, 이 한 사람에게 쓴 편지가 전 세계를 양육하는 서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큐티 하면서 생각하고 삶으로 적용할 때 하나님은 항상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간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수없이 간증하니 이혼을 막고 자살을 막았습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일대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셋째, 택하신 사도들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개인적으로 택함 받고 임명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각각 역할은 다르지만 택하신 사도는 보내신 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자원봉사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도는 양쪽의 군대에 중재하러 갔다가 중재를 못 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한 명령을 듣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늘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에서 말씀 듣고, 공동체 안에서 삶을 나누고 기도하고 일주일 내내 이 복음의 언어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어야 합니다.
넷째, 성경을 차례대로 구속사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심부터 승천하신 날까지가 있듯이, 이렇게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야 합니다. 죽을 것 같은 사건 가운데서도 성경을 차례대로 읽고 양육을 잘 받으니까,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 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가 서론이고 어디가 결론인 줄 알고 오직 한 분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차례대로 읽는 것이 큐티입니다.
다섯째, 행하며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카타콤 313년 만에 로마가 변화되었습니다. 313년 동안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행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보다 주님이 좋은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좁은 길을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초원지기로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분노로 자신은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이 되어 아내는 가출하고 자녀는 아팠습니다. 그러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일대일 양육을 받고 굳어진 마음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공동체에서 받는 권면을 피하고도 싶었지만, 계속 명령받고 양육 받은 대로 가정과 회사에서 적용했습니다. 비좁은 방에서 온 가족이 날마다 큐티나눔을 하다 보니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어 지금은 각자 공동체의 리더로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사명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육체노동직을 거쳐 지금은 한 업체의 경영자가 되었고, 부모님은 40년 동안 별거하다 합치셨답니다. 이렇게 자신의 불의함으로 잃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돌려주셨는데,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청소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교회의 사명을 이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프니까 사명입니다. 아픈 것을 통해서 이 교회의 사명에 부르심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들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 되어 참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