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끊임없이 적용해야 할 문제는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끝없는 용서와 화해의 적용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하려면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먼저 화해하기 전에는 힘듭니다. 22년간 불신과 원망의 고통 속에서 살았던 요셉의 형제들이 드디어 화해하는 본문이 오늘 나옵니다. 어떻게 화해하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 생명 내놓는 사랑 때문입니다. 요셉은 두 번이나 형제들을 만났을 때는 울었지만, 가까스로 숨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왜 이렇게 방성대곡을 했을까요? 요셉은 은잔이 베냐민 자루에서 발견되었으니 베냐민만 두고 가라고 형들을 시험하는데, 유다는 베냐민을 두고 빠져나갈 좋은 기회가 생겼으나 때려도 안 가고 발로 차도 안 가고 더 나아가서 베냐민 대신 죽겠다고 중보를 했습니다. 유다의 생명을 내건 진실한 이 변론은 도무지 하나님을 만난 자가 아니면 안 되는 고백입니다. 유다의 변호는 결국 요셉의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을 향한 요셉의 모든 시험을 종결케 하는 종결자가 되었습니다. 이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고, 감사의 눈물이고, 사랑의 눈물이고, 용서의 눈물입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당신을 숨기시기 때문입니다. 죄 범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셔야만 볼 수 있으며, 회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게 하십니다. 치유라는 것은 항상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후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책임지는 사랑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생명 내놓는 사랑을 받고 감동해서 회개하고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사랑으로 누군가를 위해 변론한 적이 있습니까? 두 번째,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요셉은 일평생 피해자인데 유다 형님을 보면서 기가 막힌 것입니다. 요셉은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화해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피해자, 가해자인 걸 알아도 먹을 것이 있고 지위, 권세가 있으면 화해가 안 됩니다. 먹을 것이 떨어져야 하나님과 화해하고 사람과 화해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평생 피해만 줄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온몸으로 가해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있어도 전혀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에만 화해와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우리를 먼저 오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가해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찾아가서 내가 가해자라는 그 소리만 해도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나의 화해 못 하는 이 사건에서 구속사적인 해석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할 때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하게 됩니다. 나의 팔림을 형님들에게 한탄하지 마세요. 우리 집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이때를 대비해서 나를 여기 총리로 삼으셔서 우리 집안 식구를 다 보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생명의 인도를 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형들에게 간증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악한 행위도 그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우리집안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기 때문에 원망이 하나도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내 사건을 구속사적 즉, 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직 영육 간에 나에게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래서 이 비밀을 알게 하려고 나의 사건이 걸어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환경은 힘들거나 아니거나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주신 것인데 지금 나를 보내신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도 여기서 찬양 받는 저 말고 힘들게 주차하시는 그분이 천국의 아랫목에 가 있을지 그 누가 압니까? 네 번째, 화해에는 책임이 수반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위해서 형들을 위해서 내 재산을 다 드리겠으니 다 와서 먹고 마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형들에 대한 요셉의 사랑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진실로 회개한 결과였습니다. 만일 형제들의 진실한 회개가 없었다면 요셉은 아주 두려운 심판자로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했기 때문에 기쁨 가운데 구원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요셉이 1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마음을 엽니다. 그러나 정말 화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화해가 안 됩니다. 모두가 가해자라는 생각을 해야 되는데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밖에 안 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안 들리고 ‘아들 문제 해결되면 떠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목자님도 계십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이 죄 짐에 눌려서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그 형들의 사랑보다 더 큰 주님의 사랑으로 부르시는 그 사랑에 반응해서 주님께로 나와 화해와 용서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