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방식으로]
수6:1~21
우리 각자와 교회의 영적전투는 오늘 말씀처럼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로 역할 잘 감당하는 적용입니다. 오늘은 어디에서도 통하는 여전한 방식의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여전한 방식은 강퍅한 적에게도 통합니다.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은 계속된 승리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할례를 행하고 피 뿌리는 희생의 유월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리고는 전쟁마다 이기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을 보고 순순히 손들고 나오면 좋겠는데 여전히 승산이 있다며 마음을 더 굳게 닫고 출입하는 자가 없습니다. 망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아서 대부분이 망합니다. 지난 주일에 양피를 베며 더 열심히 예배하고 회개하면 이번 주일에는 시부모, 장인, 장모, 배우자, 사장님이 다 교회 오는 줄로 생각하지만 여리고 같은 그들은 더 마음을 닫고 출입도 못하게 합니다. 말씀의 등불을 높이 들어 세속사를 구속사로 비추며 죄인 된 나의 모습을 보는 여전한 방식의 생활예배가 내 속의 강퍅함을 물리칩니다. 말씀을 듣고 참아야지 했는데 핍박이 더 심해진 일이 있는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여전한 방식은 내가 이기는 전쟁입니다.
어떤 왕과 용사라 할지라도 그들과의 싸움에서 예수 믿는 내가 이긴다고 하십니다. 큐티하며 순종해도 남편은 여전히 술 마시고, 애는 가출하여 ‘하나님은 믿을 수 없어, 언제까지 기다려야해. 참는 거 좋아하네’하며 오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하나씩 겪어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남편이 술과 여자를 끊고 제자리에 돌아오거나 자녀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나의 거룩을 위해 여전한 방식으로 이기게 하십니다. 모든 싸움의 목적이 상대방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와 성숙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있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여전한 방식은 인내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나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기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워야 합니다. 요단을 건넌 후 하나님은 길갈의 돌쌓기, 할례와 유월절 지키기 등 전쟁과 무관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강적 여리고도 성 주위를 매일 한 번 씩 돌라는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하십니다. 엿새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신호가 있기까지 절대 침묵해야 합니다. 60만명이 가나안을 향하는 정복전쟁에서 침묵하지 않고 저마다 의견을 내면 이 전쟁은 100% 집니다. 여전한 방식의 예배와 기도만이 구원을 위한 침묵과 외침을 분별합니다. 여리고 성 같은 가족을 위해 하루 한번씩 돌며 기도하는지, 침묵 기도와 외치는 기도를 분별하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여전한 방식은 예배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침묵한다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중심에 있어 말씀 듣고 기도하며 앞뒤로 무장한 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함께 가야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것이 예배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말씀대로 싸우는 것이 비상식적으로 보여 순종이 안됩니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여리고 앞에서 함께 말씀을 들으며 목장에서 나누고 격려받는 지체의 교제가 있어야 슬픈 현실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한 주간의 생활이 주일, 수요, 목장 예배를 중심으로 움직이나요? 아니면 내 생활 중심으로 움직이나요? 예배공동체에 동참하여 위로와 힘을 얻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여전한 방식은 무장한 군사가 선두에 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싸움은 말씀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승리로 이끌어야 하기에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자녀의 역할을 다하고 직장에서도 나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마지막에 돈이 있고 그 돈을 움직이는 사람 때문에 무너집니다. 교회도 사람 때문에 무너질 일이 많습니다. 주차가 우리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어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고 주차하지 않으면 시험들 일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힘든 일에 선두에 서서 아내와 남편, 자녀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은지, 말씀과 교회가 훼방 받지 않기 위해 성도로서의 삶을 잘 살고 있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여전한 방식이 비범한 방식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즉 우리 삶의 모든 승리는 여전한 방식으로 아침에 일찍이 일곱 번 돌 때 이루어집니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의 사건 앞에서, 더 잠잠히, 더 애통하며 말씀 붙잡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예수로 결론나길 인내한다면 여리고가 무너지는 그 칠일이 옵니다. 이 긴 전투의 유일한 상급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힘으로 무너진 여리고에서 전리품을 취하려는 마음은 없습니까? 배우자, 자녀, 시부모, 상사를 전도한 후 취하려는 전리품은 무엇이며, 내가 전도해서 사람이 달라졌다고 생색내고 있지 않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리고의 함락은 6장에 딱 한 절로 표현되는데, 이는 정복의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날마다의 과정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데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닌 ‘어떻게’입니다. 강퍅한 배우자, 문제 많은 자녀 여리고를 여전한 방식으로 침묵하고 외치며 13바퀴를 돌아 구원으로 취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 간증을 위한 내 삶의 모든 내용들이 기적이요 은혜인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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