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느헤미야 13:15~22
안식일 명령은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하고 우리 자녀들도 지켜야하는 것이기에, 오늘은 안식일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경제적 풍요가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벽 낙성식을 하고 느헤미야가 바사에 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결탁을 하니까 이방인 두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 거하며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장사를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안식일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들까지 안식일을 범하게 합니다. 느헤미야가 이것을 인식했습니다. 이처럼 늘 지체들의 영적 상태를 알아보고 관심을 두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즉각 지적했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풍요가 안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경제적인 풍요를 위해 안식일을 범하고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자녀들은 가정에서 멀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주일을 범하므로 다른 사람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경고로 받습니까?
둘째,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진노와 재앙이 임합니다.
안식일의 첫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신 후에 일곱째 날에 쉬셨다’(창2:3)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중 넷째 계명(출20:8)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입국을 앞둔 시점에 다시 십계명을 주실 때는, ‘너희가 종 되었던 땅에서 편 팔로 인도하신 여호와를 기억하여 안식일을 지키라’(신5:13~16)고 하십니다. 안식일 계명은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키지 않자 예레미야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성문이 불탄다.’(렘17:27)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목이 터지도록 경고했습니다. 결국, 그토록 안전하다 믿었던 예루살렘이 불사름을 당했습니다. 언약의 자손임을 잊고 살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이 십일조도 안 하고 안식일도 안 지키고 하나님을 떠나 헛된 수고만 하다가 하루아침에 세상 떠나 버리면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나로 인해 가족의 구원까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재앙이고 진노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셋째, 그러므로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안식일에 장사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안식은 거룩이고 거룩은 구별입니다. 일곱째 날에 복 주셨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가치관에서부터 안식이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내 멍에가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는 것이 쉼(마11:28)입니다. 안식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속사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 후 첫날입니다. 성도에게는 육을 입고 태어난 첫 출생보다 복음으로 거듭난 중생이 훨씬 중요하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지금의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성수에 한 주일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우리도 토요일부터 성문을 닫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소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넷째, 거룩한 지도자가 안식일을 지키게 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본래 성문 지키는 것은 레위의 의무이지만, 그것이 잘 안 되자 느헤미야는 자신의 종자들로 이것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십일조 신앙과 안식일 신앙을 지키게 하려면 레위가 몸을 정결케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온몸이 우리가 드릴 거룩한 영적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하려니 얼마나 맹렬한 거부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라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셔야 한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핍박과 원망에도 십일조와 안식일을 지키며 중심 잡는 나를 아끼셔서 가족들도 복되게 하시고 천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안식일은 복 주시려고 제정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헛된 수고로 안식이 없는 식구들을 위해 우리가 중심 잡는 그 한 사람이 되어 눈물 흘리고 회개하며 가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을 위해 성문을 닫고, 물건 파는 자를 삼가고, 나 자신을 정결히 하며 구원 때문에 십일조와 주일성수,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