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
휘문 권덕주 초원지기
눅22:54~62
베드로의 통곡처럼 한 사람의 회개가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1. 멀찍이 따라가는 나를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환영 받을 때 동행하다가 힘없이 끌려가시니 멀찍이 따라갑니다. 그 동안 베드로의 복음은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성공 복음이었습니다. 저는 학업 일 결혼 모두 성공하기 위해 달려 왔고, 부모님께 보호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와 사연으로 올라오는 혈기와 분노를 합리화 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가치를 알고 내 사연에서 벗어나 온전한 영적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을 부인하는 나를 회개해야 합니다.
1) 불신 결혼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공해서 의사가 되어 내 성을 쌓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이자 사법 고시를 준비했던 전처와의 결혼 역시 정욕대로 구하는 삶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결국 각자의 몸과 마음이 가정에서 멀어져 이혼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저의 불신 결혼으로 결손 가정을 만들고 상처를 양산하였기에 복음을 훼방하고 예수를 부인한 것입니다.
2) 내 삶의 사연을 물려주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혼 후 이혼의 이력이 있는 환자였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우울한 너와 내가 만나 더욱 우울한 우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들은 부모의 갈등과 이혼 재혼 속에서 원치 않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의 세대에서 끝나야 할 집안의 내력이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 지는 것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3) 자기 연민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불안장애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최고의 사역이라는 말씀으로 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에 대한 연민으로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을까 적당히 누리면서 세상에 젖어 살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이것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돌아보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음에도 주님은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심히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비참하게 일그러진 상황에서 주의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 최고의 복된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 주님은 우리를 돌이켜 보시고 치유와 회복으로 이끄실 것입니다.